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영기 (문서 편집) [include(틀:역대 한국은행 총재)]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ea2, #035698 20%, #035698 80%, #004ea2)" '''제14대 한국은행 총재[br]{{{+1 하영기}}}[br]河永基 | Ha Young-gi'''}}}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하영기.jpg|width=100%]]}}} || ||<|2> '''출생''' ||[[1925년]] [[11월 19일]] || ||[[경상남도]] [[창원시|마산부]] || ||<|2> '''사망''' ||[[2022년]] [[4월 15일]] (향년 96세)|| ||[[서울특별시]] || || '''학력''' ||[[마산고등학교|마산중학교]] {{{-2 (졸업)}}}[br][[구제고등학교|경성제국대학 예과]] {{{-2 (문과 / 수료)}}}[br][[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2 (정치학 / 학사)}}} || || '''경력''' ||[[한국은행]] 이사[br][[한국은행]] 부총재[br][[SC제일은행|제일은행 행장]][br][[산업은행|산업은행 총재]][br][[ABL생명|제일생명]] 사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금융인. 최초의 공채 출신 [[한국은행]] 총재. == 상세 == 1925년 [[경상남도]] [[창원시|마산부]] 출생. [[마산고등학교|마산중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4월 [[구제고등학교|경성제국대학 예과]](문과) 제20회로 입학했다.[[1945년]][* 전시 수업연한 단축에 관한 임시조치에 따라 1941년(예과18회), 1942년(예과19회) 입학생은 각 6개월씩 단축된 2년 6개월, 1943년 입학한 예과20회는 2년제로 1년이 단축되었다.] [[대학예과|예과]] 수료 후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학과로 진학했으나 해방과 연이은 [[국대안]] 파동으로 [[국립서울대학교]]가 설립되자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경제학부|상과대학 경제학과]]가 아닌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문리과대학 정치학과]]으로 소속을 옮겨 [[1948년]][* 오늘날 6-3-3-4의 미국식 학제와 달리 일제시대에는 6-5-3-3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해방 후에도 [[국립서울대학교]]에는 경성제대 예과를 비롯해 [[구제고등학교]], [[대학예과]], [[구제전문학교]] 등을 마친 사람들을 위하여 3년제 [[구제대학|구제 학부]] 과정을 한동안 존속시켰다. 예과 수료생인 하영기는 이 3년제 구제 학부 과정으로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것이다.] 졸업(문리대 제2회)하였다[* 동기로 [[채문식]] 전 국회의장, [[박준규(1925)|박준규]] 전 국회의장 등이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11403|출처]] 대학 졸업과 함께 [[조선은행]](現 [[한국은행]]) 공채 1기 수석으로 입행하였다. 이후 잠시 [[기획재정부|재무부]] 장관 비서관으로 파견간 것을 제외하면 한은 조사부에서 주로 커리어를 쌓았다. [[1970년]] 한국은행 이사, [[1974년]] 한국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그는, [[1979년]] [[SC제일은행|제일은행장]]으로 발탁되어 잠시 상업금융 분야에 발을 들이기도 하였으나, [[1980년]] [[산업은행]] 총재로 부임하여 다시 정책금융 분야로 복귀하였다. 이윽고 [[198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 선임되어 공채 출신, 해방 이후의 국내 대학 출신으로는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총재 재임 시에는 --사진에서 보이듯-- 거구와 성격상 보스 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총재 재임 시절에는 고질적인 현안이었던 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 간 분리 문제를 두고 [[기획재정부|재무부]]와 갈등을 빚었으며, 잇따른 금융 관련 사고도 발생하였다. 이윽고 [[1983년]] 사의를 표명하였고, 정치학과 후배이지만 재무부 [[경제관료]] 출신인 [[최창락]] 산업은행 총재에게 한은 총재직을 인계하였다. 퇴임 후에는 [[ABL생명|제일생명]]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국군정보사령부]] 부지 매입 사기 사건에 명의가 도용되어 구설수를 사기도 했다.[[https://www.tfmedia.co.kr/news/article.html?no=86677|링크]]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개입을 부른 외환위기 당시 국회가 금융감독기구 통합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려 하자 다른 전직 한은 총재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한은의 독립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22년 4월 15일, 향년 96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 가족 == 부인이 출납과 행원 출신으로 사내결혼을 했다. 참고로 조선은행 출신인 [[김정렴]] 전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사내결혼이다. 해체된 조양상선의 박남규 회장과는 사돈관계이다. [[분류:1925년 출생]][[분류:2022년 사망]][[분류:창원시 출신 인물]][[분류:마산고등학교 출신]][[분류:경성제국대학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한국은행 총재]][[분류:진주 하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