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E-767 (문단 편집) == 도입 경위 == 1976년, [[MiG-25|빅토르 벨렌코 중위 망명 사건]] 이후 일본의 저고도 방공망이 생각보다 허술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일본 정부는 조기경보기의 도입을 서두르게 된다. 당시 항공자위대는 미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최신형 [[조기경보통제기]] E-3A를 요구했으나 방위청(현 [[방위성]])은 수출 허가가 떨어질리도 만무하며, 그런 대형기를 운영할 수 있는 항공자위대 비행장도 없고, 너무 비싸다는 점을 들어 거부하고 대신 미해군 함재기인 [[E-2]] 조기경보기를 구입해주었다. 약 20년 후인 1991년, [[NATO]]와 [[영국]], [[프랑스]] 등이 [[E-3]]를 도입하자 일본도 같이 E-3A 4기를 주문했다. 그러나 같은 해 베이스 기체인 [[보잉 707]]이 단종되어 주문을 보류했는데 이때 [[보잉]]이 더 체급이 큰 [[보잉 767|767]]을 베이스로 당시로서는 최신이었던 E-3C AWACS 시스템을 채워넣은 모델을 제안하였다. 대당 가격은 일본이 당초 예상했던 296억엔의 2배 수준인 569억엔으로 당장 도입이 취소돼도 할 말 없었으나 대장성(현 [[일본 재무성|재무성]])은 구매비용을 단 한푼도 깎지 않고 그대로 승인했다. 당시 막대한 대일무역적자로 불만을 쌓아두던 미국의 눈치를 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고자 과감히 콜을 때린 것. 또한 이런 경제적·외교적 마찰 완화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더라도 [[도쿄]]를 기준으로 약 2,000km 떨어진 [[센카쿠]], 약 1,700km 정도 떨어진 [[오키노토리시마]]까지의 커버리지를 감안하면 대형기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파일:BI219156.jpg|width=100%]] || || 보잉의 공장에서 조립되는 E-767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