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ENTA (문단 편집) === [[프로레슬링 NOAH]] === 초등학교 시절 패미컴으로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다가 자기 이름과 한 글자 차이 나는 '절대왕자' [[코바시 켄타]]를 알게 되고,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에 TV나 잡지 등을 보며 코바시 켄타의 팬이 되고, 프로레슬링에 빠지게 된다. 1999년,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개최한 오디션에 합격하고 연습생이 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기 전에 당시 트레이닝하던 곳의 관계자가 코바시 켄타와 아는 사이였는데, 이로 인해 오디션 당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코바시 켄타가 추천서를 써줬다고 한다. 2000년 3월 11일에 코라쿠엔 홀에서 데뷔한 후 5월에 본명인 코바야시 켄타로 싱글 경기 데뷔전을 치르는데, 이때의 상대는 훗날 숙명의 라이벌이 될 [[마루후지 나오미치]]였다. 데뷔 직후 1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벌어지자 코바시 켄타를 따라 [[프로레슬링 NOAH]]로 이적하게 된다. 원래 [[미사와 미츠하루]]는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정도만 데리고 나가 [[사사키 켄스케]]의 켄스케 오피스 같이 작은 단체를 꾸리려고 했는데, 코바시 켄타가 적극 동조해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이던 대부분의 선수들[* [[카와다 토시아키]], [[후치 마사노부]], 타이요 케아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프로레슬링 NOAH로 합류했다.]을 끌어들여 판이 커진다. 그만큼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함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차세대 유망주로 키우던 선수 중 하나고, 코바시 라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사와 라인인 마루후지와 대비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메이저 단체로 부상하게 되는 프로레슬링 NOAH의 초창기부터 강력한 라이벌 구도가 성립된 동시에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다. 신인 때는 주니어 헤비급답게 공중기와 스피드를 겸비한 경기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이러한 스타일은 라이벌인 마루후지 나오미치나 당시 연습생이었던 [[스즈키 코타로]]에게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킥복싱을 배우며 발차기를 위주로 운영하는 킥커형 경기 스타일로 변화한다. 또 이 시기에 부상을 자주 당하자 친구가 액땜의 의미로 권유한 KENTA라는 링네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