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34-85 (문단 편집) == 개발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34-85D-t5.jpg|width=100%]]}}} || || '''Т-34-85 프로토타입''' || 1943년, [[나치 독일]]이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 등의 기갑 병기들을 [[독소전쟁|동부전선으로 내보내면서]], 기존의 [[76mm F-34|76mm F-34 전차포]]의 화력으로는 정면에서 도저히 이 두 차량들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 기존 사용하던 76.2mm F-34 전차포는 본래 [[ZiS-3]] 계열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고폭탄의 위력은 그렇다해도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독일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직 장갑이 50mm 수준에 머물렀던 초기형 3호, 4호 전차를 상대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일종의 중장갑 기병 개념으로 운용되는 중전차계의 괴물이니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4호 전차조차 전면장갑을 80mm로 강화하며[* 4호 전차 G형]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4호 전차는 76mm 주포로 어느정도 계속 상대가 가능했지만 새로 쏟아져 나오는 티거나 판터에게는 답이 없었다.[* 독소전에서 대규모 기갑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조차 독일군은 티거를 중대급으로 겨우 운영할 정도로 [[6호 전차 티거]] 생산이 어려웠다.(전차 자체의 성능으로는 당시 전차 중에서 최강이지만, 기름소모량이나, 제작시 들어가는 자재 소모량이 너무 컸다.) 주력전차로 사용하기 위해서 생산한 [[5호 전차 판터]]는 대규모로 운영되었으나, 잦은 고장에 이미 당시에 우주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소련군에게는 무뎌딘 칼날이었다. 심지어 지뢰매설 장소로 들어가서 적 야포에 포격 목표나 되었다. 이에 비하면 T-34는 수백 대가 박살나가면서도 독일군 전차들을 소모시킴으로써 소련에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하였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이로 인하여,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로, 외관상으로도 3인용 대형포탑과 장포신 주포로 인해 T-34-76과 비교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사실 이 차량의 포탑은 "알렉세이 모로조프"가 제작한 또 하나의 전차인 [[T-43]]의 포탑을 가져온 것인데, 모로조프는 T-34와 [[KV-1]]을 하나로 묶은 일종의 [[MBT]]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산 공정을 단일화 하려는 목적으로 T-43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군부에서 [[쿠르스크 전투]]와 잇따른 실전의 데이터를 축적한 후 분석한 결과 중장갑 차량 대신에 고화력의 차량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소련에선 이 차량의 채택을 거부하였다. 그렇지만 둥글둥글한 포탑의 방호력은 정면 90mm라는 높은 수치를 지니고 있었고, 또한 [[SU-85]]에 얹어봤던 85mm포의 위력은 뛰어났기에 소련군은 포탑만 다시 가져와, 43년에 85mm KS-12 대공포를 전차포로 개수한 53구경장 85mm D-5T 전차포를 탑재하고, 포탑링의 지름을 1,400mm에서 1,600mm로 늘린 포탑을 얹어 제작된 것이 바로 '''"T-34-85 D-5T"'''였다. D-5T 버전을 4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사용한 소련군에서는, T-34의 업건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D-5T 버전과 동구경의 ZiS-S-53 강선포를 장착한 신규 차량을 개발하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하야 [[오비옉트 135]], 통칭 '''"T-34-85"'''로, 향후 80여년간 기나긴 전설을 써 내려갈 전차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