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을슼 (문단 편집) === 가을만 되면 미치는 선수들? === 최전성기 시절 때는 시즌 개막 후 4월~6월까지는 미친 듯한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7월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영 좋지 못한 성적으로 반타작 정도만 하다가, 후반기만 되면 미쳐돌아가는 일이 매년 있었다. 이런 징크스로 유명한 선수는 박정권과 조동화, 김재현 등인데 특히 박정권은 늘 시즌 중반까지 2할 5푼을 치다가 시즌 끝나고 보면 2할 8-9푼은 치고 있다. 이로 인해 [[솩갤]]에서는 박정권이 2군에 가면 '여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박정권이 미쳐돌아가기 시작하면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엄밀히 말해 이건 [[김성근]]의 시즌 운용과 관련이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 가능하며, 가을솩이란 말이 언제나왔는지 생각하면 김성근과 무관할 수는 없다. 김성근이 SK에서 전성기를 구가할때 리그는 [[투고타저]]+126 or 133경기+8개 구단 체제였다. 김성근은 리그 초반에 선수들을 아낌없이 갈아넣으며 승수를 잔뜩 쌓았고 그 반동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여름에 시원찮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6월까지 쌓은 승수로 어찌어찌 버티고 4강 진출팀이 얼추 갈리는 가을에 1위팀과 정면대결하기 꺼리는 중하위권 팀들을 집중적으로 조졌다.[* 2001년 처럼 혼전성향이 강하다면 한 경기라도 더 이기려 달려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1위팀과 정면 대결하기 보단 하위권 팀이나 같은 중위권팀 상대로 전력투구하는게 중위권 팀들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위권 팀이야 어차피 시즌 망했으니 적당히 무리하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고.] 당시 SK 선수단은 젊었고 144경기 체제로 접어든 지금보다 경기수가 적고 투고타저라서 투수들에게 걸리는 부담이 덜했기에 버텨낼수 있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로이스터의 롯데 빼곤 전부 불펜야구로 외국인 타자도 [[카림 가르시아]] 말곤 없었으며 지금보다 우천취소가 잦았다. 와일드카드가 없어서 중위권 팀들이 상대가 누구건 전력투구하는 경향도 덜했다. 평생 방식 바꾼적 없는 김성근이 SK에선 성공하고 한화에서 망한 이유는 이걸로 설명가능하다.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니까.[* ~~노인정 야구~~평균 연령 30대, 144경기, 타고투저~~타저투병이 아니고?~~, 10개 구단과 이로 인한 와일드카드 제도 신설, 리그 패러다임 진보 등.] 가을솩이 유명무실해진 것도 이걸로 설명 가능하다. 애초에 '''가을이라고 없던 실력이 생길리가?''' 그냥 '''그 시절에 통하던 [[김성근]]의 방법론이 빚어낸 [[기담]]'''에 불과하고 SK 전력이 약해지고 다른 팀들이 성장하면서 자연히 희미해진 것 이다. 물론 시즌을 장기적으로 보고 운영해야하는 감독 입장에서는 훌륭한 전략을 취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김성근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며, 당시의 김성근이 갖고 있던 팀과 당대 리그 상황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잘 어우러져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