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톨릭대학교/학부/신학대학 (문단 편집) == [[신학교]]에 가려면 == 위에서 보다시피 입학시험 자체는 쉬운 편이다. 서울이 컷이 가장 높은데, 아무리 높다고 해도 성소자 부족으로 4등급 언저리까지 내려간 수준이다. 편입이라고도 하는 대학 졸업자 전형은 거의 날로먹는 수준이다. [[학점은행제]], [[독학사]] 등으로 4년제 학위를 취득하고, 영어 성경 해석과 예비신자 입교 교리서를 외우면 된다. 영어 성경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 천주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NABRE 기준이다. [[NRSV]]는 이것보단 영어수준이 더 높다.] 공관복음은 중등 영어 수준, 서간은 고등 영어 수준이면, 특수한 단어 몇개만 외우면 술술 읽히는 수준이다. 인성검사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만 아니면 통과이고, 본당 주임신부와의 관계는 미사만 꼬박꼬박 참석하고 본당 주일학교 교사, 청년 활동만 무난히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고, 신부로 가려는 남성이 계속 줄고 있는 만큼 소속 본당에서 심각한 문제아라고 주홍글씨가 찍히지 않는 이상은 본당 주임신부 입장에서는 신학교 진학한다고 면담하면 진심으로 환영한다. 지나친 신비주의로, 그 어려운 신학을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지만, 들어가면 다 하게 되어있다. 일단 신학교의 보수적인 환경 탓에 20년 이상 같은 내용만 반복하는 교수 신부들이 많기에, Codex라고 하는 족보만 봐도, 시험기간에 조금만 열심히 하면 통과가 가능하다. 어차피 성적을 잘 받는다고 서품 후 인사이동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기에, 과락(F 학점)만 받지 않으면 된다. 또한 성소자 부족으로, 사실상 백지만 내지 않으면 F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Codex의 Codex, 곧 그냥 통과용으로 10줄 정도로 요약해서 그 내용만 쓰고 나와도 충분하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따라서 무조건 성소자 숫자만을 늘리려는 식의 분위기에 묻어가려 하지 말고, 진정 신부의 길을 걷기 위해선 자신을 '''냉정하게''' 성찰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아래의 덕목은 개신교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니 목회자의 길을 가려는 개신교 친구가 있으면 함께 알려주자.] 1.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마저 최소한 겉으로라도 미움없이 대할 수 있는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처럼] 2. 처음보는 사람과도 허물없이 이야기 하고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가?[* 사목이나 목회에 있어서 사교성은 중요하다.] 3. 다양한 상황에서도, 기도생활에 진정 충실할 자신이 있는가? 4. 주말에 하느님을 위하여 세속의 비(非)신자 친구들 만나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5. 매주 월, 수, 금 새벽미사에 전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도 자리를 중간에 파하고 일찍 취침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는가?[* 개신교 버전으로는 '매일 하는 새벽예배, 수요예배, 부흥회, 고난주간 예배, 수련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자리를 중간에 파하고 일찍 취침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는가?'라고 하면 딱 들어맞는다.] 6. '''일정 기간만이라도, 절대로 음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가?'''[* 특히 개신교 목사나 성공회 신부는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수도회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생활해서 이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역시 음란한 생각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 이들 역시 이 생각을 못 이기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륜행위를 하다가 적발될 시에는 목사직/신부직을 박탈당한다.], 신부는 사회와 노출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위에 기술된게 모두 가능하다 해도 이게 불가능하면 신부로서 장래희망을 갖는거에 진심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요컨데, 세속적인 행복이나 명예 등을 신앙과 그리스도를 위해 겸허히 봉헌하는 태도를 스스로 생활화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성소나 목회자의 길로 진입할지 말지의 여부를 가리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이 이런 면에서 부족하다면 바로 신학교 들어갈 생각말고 지속적인 기도, [[고해성사]], [[영성체]]와 영성수련을 하며 계속 자질을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개신교 버전으로는 QT, 성경통독, 기도, 회개라는 수단을 통해 계속 자질을 닦아나가야 한다고 말하면 딱 들어맞는다.] 입학하면 변한다고 하지만, 신경써주는 사람들은 적으니, 본인이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절대 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므로 항상 삶의 마지막 날처럼 자신을 은총으로 갈고닦지 않는다면, 신학생이 되더라도 자비없이 사정회의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개신교 목사 버전으로는 자신이 자진해서 자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고 보면 된다. 개신교 같은 경우에는 성폭행이나 부정행위와 같은 중범죄 혹은 학사경고를 상습적으로 받은 것이 아닌 이상 퇴학당하지 않는다.] 일단 신부 혹은 목회자의 삶은, 겉으로만 보기에는 매우 화려해보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사실상 본당[* 개신교 버전으로는 예배당]의 연예인과 같은 삶을 누린다. 그러나 절대로 이것만 바라봐서는 절대 안 된다. 취미생활 단 하나만 빼고 세속적인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일단 사회 친구는 거의 못 만난다고 보면 된다. 목사/신부가 본당 미사/예배를 펑크내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__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__ 평일 저녁에는 다음날 새벽미사를 위해 늦어도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목사 역시 다음날 새벽예배나 부흥회 혹은 고난주간 예배 같은 일정이 있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설교준비에 몰두해야 한다. 거기에 신부들은 미사 전 고해성사(5시 40분 경)를 집전하기 위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사실상 평일 오전과 오후 시간만 빼면 가용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부/목사들은 미사/예배진행과 강론/설교 외에도 이런저런 업무가 있다. 또 유의할 점은, 신학생의 밤에는 심각한 고독이 찾아온다. 신학생 때야 바로 옆방에 친구들이 있지만, 당장 서품을 받고 본당에 부임하면 [[시어머니]] 역할의 주임신부 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게, 본당 보좌신부는 주임신부가 되기 위한 일종의 수련 과정이라서 그렇다.][* 개신교 목사들은 그나마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가정을 꾸릴 수 있어 외로움은 덜하지만 그래도 [[번아웃 증후군]]에 노출되기 쉬운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적한 밤에 청년들을 부르자니, 친한 사람들만 모여서 술 한잔 하고 싶고, 그러다보면 [[편애]]한다는 소문이 돌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청년들과 만나자니 그건 싫고, 그러면 부를 사람이 없고, 또, 기회가 되어 친한 청년들만 모아서 술 한잔 한다고 해도 과음을 해서 새벽미사에 지장이 갔다가는 교구청에 소환을 당하고, 여자 청년에게 술김에 추파를 던졌다가는 얄짤없이 '''면직''', 즉 사제직을 완전히 박탈당한다.[* 개신교 목사 역시 이성 청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순간 해당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목사직도 박탈당한다.] 신부가 성당의 왕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옛날에는 본당 숫자도 적었고, 본당 공동체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그런 환경에서 Excommunicatio(파면)를 시켜버리면(신자 OOO는 앞으로 성당 출입을 금한다.) 신자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고, 무서워서라도 신부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고,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욕설을 하며 호통치는 경우도 많았다.[* 일례로 약 10년 전만 해도 어린이 복사단은 본당 신부, 수녀에게 매맞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 그랬다가는 아동학대로 고소 당하기 딱 좋다.] 그러나 현재, 신자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성당의 주인은 신자라는 민주주의적 생각이 가득하다. 사실, 가톨릭 교회론을 엄밀하게 따지자면, 개신교면 몰라도 가톨릭의 경우 불변하는 교계 제도가 명확히 있기에 민주주의적 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본당 주임신부야 어차피 임기만 채우고 떠날 사람인데, 왜 자신들에게 간섭이냐는 가치관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완고한 태도로 공동체가 파탄나기라도 한다면, 그 꼬리표는 다른 본당을 가서도 따라붙게 되고, '폭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간혹 신학생들 중에 변화하는 교회 사정을 모르고 '내가 수녀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니 앞으로 나에게 보고하세요.'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목자로서, 자신이 보기에 잘못된 행동을 하는 신자가 있을 때, 신부, 신학생, 수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의 회개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온건한 태도로 사랑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타일러야 할 것이다. "자매님/형제님! 당신은 문제가 많으니 앞으로 성당 나오지 마세요!!" 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또한 절대 인격적 모욕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정신적 상처를 받은 신자는, 10분 거리의 다른 성당에 가면 된다. 그리고 신부가 임기를 채우고 떠나면, 다시 원래 본당에 복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것도 5년~10년 동안 성당을 다니며 신앙이 어느정도 쌓여있는 신자들이나 이러지, 교리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신자나 [[세례성사]]를 갓 마치고 다니고 있는 새신자들 앞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모습을 본 순간부터 다음날 [[냉담자]]가 되버리거나 더 심한 경우 가톨릭에 대한 종교혐오와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의 눈에 사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수의 이미지 그대로를 이어받은 완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에 '사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실제로 음주와 흡연을 하는 사제를 보면서 놀라는 예비신자와 새신자들이 있다.]요즘 가뜩이나 청년들이 귀한 상황에서 청년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꾸짖거나 호통을 쳤다가 청년들이 안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 비난은 전부 성직자, 수도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직자, 수도자 모두 '자신이 본당의 왕'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모범적 신심생활로 본을 보이고 신자들을 교리적으로 올바로 대하고 올바른 교리와 행실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하되,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함과 동시에 잘못된 것은 온화하게 교정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자들을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제 성소 문제는 만 29세까지 시간이 있으니 세속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영성을 고려하며 서둘지 말고, 천천히 식별하며 생각해도 무방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