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송미술관 (문단 편집) == 여담 == 이 박물관이 하마터면 송두리째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됐을 때, 북한군이 유물들을 [[평양]]으로 이송하려 했던 것. 다행히 미술사학자인 [[최순우]] 등이 이송 준비를 진행하는 척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유물 목록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거나 유물의 포장 작업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고, 북한측 담당자들에게 고급 술을 대접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다만 이는 최순우 등이 부역자로 몰릴 것이 두려워서 양념을 친 것으로 보이고, 현실적으로는 북한군이 급히 퇴각하면서 가져갈 여력이 없어서 두고 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UN군이 서울을 탈환할 때까지 이송을 막을 수 있었다. 이후 중요 문화재들을 부산으로 피난시켰지만,[*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형필 본인이 피난 생활 때 베개 밑에 두고 잠을 잘 정도로 철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전시 상황이란 한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던 서적류나 그림들은 미처 피난시키지 못해서 많은 수가 사라졌다고 한다. 심지어는 서울에 두고 온 문화재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어서 간송 일행보다 부산에 먼저 내려와서 골동품상에 팔리고 있기도 했다고 한다. [[2012년]]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32&aid=0002259786|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의 훼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소장품을 목격한 관련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보존 상태가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사고 있다. 또한 건물인 보화각 역시 세운지 70년이 넘은 낡고 작은 건물이라 소장품을 보관하기에는 적합하다고 보기 힘들고, 건물 자체의 상태마저 썩 좋은 상태가 아닌 상황. 하루라도 빨리 대책이 필요하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가치는 돈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며, 소장품을 [[경매]]에 부친다면 다 파는데만 1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경매에 소요되는 각종 절차를 제외하고도 그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전형필이 구입한 가격을 아득히 뛰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0년, [[대구광역시]]에서 착공할 [[대구 간송미술관]]에 대해 공모전을 했는데, [[https://blog.naver.com/cu1985/221926195773|당선작]]은 이렇다고 한다. 지금의 간송미술관 부지보다 10배 이상은 넓으며 수집한 대부분의 물품들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한 달에 겨우 4번만 못 보게 된다. (월요일 휴관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