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왕후 (문단 편집) == 생애 == 아버지는 [[현종(고려)|현종 원문대왕]], 어머니는 [[원순숙비]] 김씨[* 생전 존호는 경흥원주(景興院主) - 덕비(德妃), 고려사 원목왕후 열전에선 경흥원주(景興院主) - 귀비(貴妃)로 나온다. [[사후#死後|사후]](死後) 왕후가 아닌 숙비(淑妃)의 시호를 받았다.]이다. 경성왕후는 어머니 원순숙비의 성씨를 따랐으며, 남편인 덕종과는 이복남매 지간이다. 덕종의 제3비 [[효사왕후]]와도 이복자매[* 현종과 제4비 [[원혜왕후]]의 딸] 지간이다. 외할아버지는 [[신라]] [[원성왕]]의 후손인 경조현 개국남(京兆縣 開國男) [[김인위]]이고 외삼촌은 정간공(貞簡公) [[김원충]]이다. 외사촌은 [[정종(고려 제10대)| 정종]]의 비인 용절덕비(容節德妃), [[문종(고려)|문종]]의 비인 [[인예왕후]], 인경현비(仁敬賢妃), 인절현비(仁節賢妃), 인목덕비(仁穆德妃)[* 용절덕비, 인목덕비는 [[김인위]]의 아들 [[김원충]]의 딸이고 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는 [[김인위]]의 사위 [[이자연(고려)|이자연]]의 딸이다.]이다. [[경주 김씨]]는 연속으로 왕의 비를 배출함으로써 가문의 기세가 매우 강해진다. 경성왕후는 혼인 전에 '경흥원(景興院) 장녀(長女)'로 불렸다. 경흥원은 어머니 원순숙비의 관저였다. [[목종(고려)|목종]] 역시 어렸을 적에 어머니 [[헌애왕후]]의 관저명을 따 '숭덕궁(崇德宮) 적남(嫡男)'으로 불렸다. 경성왕후는 덕종 3년인 1034년 2월 당시 19살이던 덕종과 혼인했으며 같은 해 9월 덕종이 사망함으로써 혼인 생활을 7개월 밖에 하지 못했다. 짧은 혼인 생활로 자식이 없었으며, 선종 3년인 1086년 7월에 [[죽음/표현#제후(諸侯)|훙서]](薨逝)했다. 능호는 질릉이고, 슬하에 자식이 없어 [[태후]]의 [[존호]]를 받지 못했다. 남편인 [[덕종(고려)|덕종]]과는 정반대로 매우 오래 살았는데,[* 52년을 더 살았다.] 최소 현종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여섯 군주의 치세를 보고 사망했다. [[분류:고려의 왕녀]][[분류:고려의 왕비]][[분류:1086년 사망]][[분류:경주 김씨 장군공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