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연수 (문단 편집) === [[수안 계씨]] [[족보]]에 보이지 않는다. === [[계(성씨)|계]](桂)씨의 본관은 [[수안군|수안]](遂安)을 비롯하여 금천(衿川) 충주(忠州) 전주(全州) 나주(羅州) 해남(海南) 경주(慶州)등 12본이 있지만 현재는 수안으로 합본되었으며 나머지는 세거지로 파악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 있는 계씨는 수안 계씨 밖에 없다는 뜻인데 이 수안 계씨 족보에 계연수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계연수가 죽는 과정을 보면, 조선독립군으로 위장한 일본의 밀정에게 [[끔살|죽임]]당했다고 나와있다. 독립군 내부에 밀정을 잠입시킬 정도면 계연수는 일본에게 매우 요주의 인물이었으며, 이는 즉 독립군 내에서도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당시 계연수와 관련이 있었다고 언급된 인물들(이기, 홍범도, 오동진, 이상룡 등등)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의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또 계연수가 명망있는 독립투사였다면 당연히 계연수쪽 집안에서도 이를 알았어야 하고, 설사 먼 친척뻘이라 쳐도 그렇게 훌륭한 분이면 어떻게든 끌어와서 족보에 올려놨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들과 크게 관련없어도 역사에 크게 이름을 떨친 분이면 조작을 해서라도 족보에 올려놓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 단단학회와 증산도를 위시한 환단고기 신봉자들[* 증산도가 환빠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증산도 종교단체는 적극적으로 환단고기를 추종하고 홍보하고 있으며, 실제로 나무위키에서 2018년 10~11월 경에 다수의 증산도 동원계정이 본 문서를 포함해 여러 문서에서 외부개입을 한 것이 들통나 영구적으로 차단되었다.]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비명횡사한 사람이 수도 없으며, 그렇기에 자손도 남기지 못하고 대가 끊겨서 족보에 누락된 사람이 부지기수라 계연수 또한 누락된거라 설명한다. 한글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독립운동가 [[계봉우]]의 예를 들어, "1880년에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출생한 북우 계봉우는 1911년, 북간도로 망명했고 민족주의 교육에 헌신하면서 『신한독립사』, 『조선역사』, 『오수불망(吳讐不忘)』 등을 편찬하였으며, 북간도 연길 소재 광성학교(光成學校) 교사로 활동하다가 연해주로 건너가 이상설, 이동휘가 주동하던 대한광복군정부의 책임비서와 「건업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권업신문勸業新聞」에 10회에 걸쳐 『만고의사 안중근젼』을 연재했다. 그런 공식적인 인쇄물을 많이 남긴 계봉우도 수안 계씨의 족보에 없다. 실제로 계봉우의 아들 계학림씨는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족보에서조차 아버지의 이름이 남아있지 않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원래 빈궁한 관노(官奴)출신에다 많지않은 성씨여서 그의 가계는 물론, 모친이 장(張)씨라는 것 외에는 부친의 이름조차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계연수도 족보에 없다." 와 같이 말한다. 즉, '계봉우도 천한 출신이라 본관이 없는데 계연수라고 족보에 없다 하여 가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인데 우선 계봉우의 본관이 천한 출신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계봉우가 어디의 계씨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기는 하지만, '본관이 알려져 있지 않다 = 천한 출신이다'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게다가 계봉우는 [[http://reporter.korea.kr/newsView.do?nid=148716785|그 후손이 멀쩡히 살아 있고 카자흐스탄 한인회가 그의 행적을 기록한 책을 출판하는 등]] 기록이 존재하고, 1911년에 북간도 광성학교의 교사를 맡았다는 것, 이상설, 이동휘가 주도한 대한광복군정부에서 일했다는 것 등 행적도 명확히 알려져 있다. [[http://www.mpva.go.kr/narasarang/month_hero_view.asp?id=356|출처]] 그러나 계연수는 알려진 후손도 없을 뿐더러, 공인된 독립운동 유공자들 중 그 누구도 '''계연수와 함께 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본에서 암살자를 보내어 그를 암살할 정도라면 그는 아주 명망이 높았거나, 능력이 뛰어났거나, 또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던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명하거나, 유능하거나, 강력한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독립운동가가 한 사람은 있었어야 할 것이나 그런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결국 계연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걸 나타내는 것이다. 게다가 만일 계연수가 실존 인물이고 정말로 [[환단고기]]를 기록하여 보존했다면, 그가 천한 인물일 가능성은 없다. 이유립이 기록(진실을 날조)한 환단고기의 초판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만에 하나 진서라면 계연수는 상당한 학식이 있어 그 정도 규모의 책을 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한 사람일 가능성보다 어느정도 교육을 받고 한문의 읽기 쓰기가 가능한 양반계층일 가능성이 높고, 결정적으로 수안 계씨 족보에 계연수가 없다는 점에서 그의 실존 가능성은 극히 적어진다. 다만 수안계씨가 본거지가 북한에있는만큼, 통일이되고 조사를해봐야 실존여부 종결이날듯말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