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제(전한)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이자 초대 [[황제]]. [[중국사]]에서 진 [[시황제]], [[이세황제]]와 초 [[의제(초)|의제]]에 이어 네 번째로 [[황제]]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쓴 인물이며, 휘는 방([[邦]])이며, 보통 '''유방'''이라고 불린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로, 기존의 지배층이었던 제후나 귀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피지배층에서 황제라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진(영성)|진(秦)나라]] 말기의 대혼란에서 세력을 일으켜, [[초한전쟁|초한대전]]에서 숙적 [[항우]](項羽)를 제압하고 천하를 차지했다. 중국 전 역사를 통틀어서 이렇게 평민이 패업을 이루고 황조를 연 사례는 약 이로부터 1,500여년 뒤의 시대인 [[명태조]]밖에 찾아볼 수 없을만큼 유래없는 일이었다. 이후 각지의 반란을 평정하고 [[이성왕]](異姓王)들을 숙청하여 대제국 한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한족|한(漢)족]], [[하나의 중국]]과 같은 오늘날까지 엄존하고 있는 [[중국]]의 국가적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낸 왕조의 창시자로서 [[중국사 관련 정보|중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황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했으나 완벽히 하나로 묶어내는 것에는 실패했고, 한고제는 이를 이뤄냈다. 또한 이후 중국에 분열기가 찾아왔어도 그때마다 통일 국가의 대의명분을 제공해줬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 혹은 한족의 중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원|헌원황제]]로 대표되는 [[삼황오제]]가 있고 역사적 실증으로만 따져도 [[상나라]] 등 한나라 보다 이전의 시대가 있지만, 한고제가 창설한 한나라가 후세에 통일된 중국과 중화문명의 큰 기반을 제공하고,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한족(漢族)'''이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중시조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주로 '''한고조(漢高祖)'''라는 호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정식 [[묘호]]나 호칭은 아니다. 유방의 묘호는 '''[[태조]]'''이며 시호는 '''고황제(高皇帝)'''다. 다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역사책)|사기]]》에서 [[고조]](高祖)라는 표현이 나와서 그것이 유방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칭호로 굳어진 것. 정확히 말하자면 고조는 시호인 고황제의 존칭인 것이다. 다만 이 고조(高祖)라는 표현이 한고제 본인을 칭하는 상징적인 칭호를 넘어, 후대 왕조의 창건자들에게도 붙는 묘호가 된 것은 고제의 영향이 컸다고도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