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제(전한) (문단 편집) == 출생 == [[파일:패현.png]] 유방은 [[패현]](沛縣) 풍읍(豊邑)[* 지금의 [[장쑤성]] (江蘇省) 펑현(丰县, 병음: Fēng Xiàn)][* 풍읍의 패현이라 '풍패'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전주]]의 별칭이 풍패였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전주 이씨|본관]]이 전주이기 때문.] 중양리(中陽里)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원래는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 땅이었으나 유방이 태어나기 3~40여년 전인 기원전 286년 송나라가 망하면서 초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풍읍은 위치에서 알 수 있듯이 초의 중심 지역보다는 위(魏)의 국경 지역과 훨씬 가까운 지역이었다. 거기에 유방의 동생의 후손인 전한의 학자 [[유향]]의 말과 그를 인용한 [[한서]]의 기록에서는 유방의 선조는 위가 대량으로 천도할 기원전 4세기 중반 무렵 진(秦)에서 위나라로 포로로 끌려 갔다가, 이후 신릉군과 동시대의 사람인 유방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야 풍읍에 정착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유방의 증조부이자 유태공의 조부인 [[유청(전국시대)|유청]]은 위나라의 대부 벼슬까지 지냈다고 하는데 이 사건으로 가세가 몰락해 평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친은 [[유태공|태공]](太公)이었고 어머니는 유온(劉媼)이었는데 태공이나 온은 남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호칭에 지나지 않았다고 《사기집해》나 《사기색은》 등의 주석서에서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유태공과 유온을 현대어로 풀이하자면 그저 유씨댁 어르신, 유씨댁 안주인 정도의 의미로 유방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유방 본인도 마찬가지인데, 《사기》나 《[[한서]]》(漢書)에서는 '''아예 유방(劉邦)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대목이 없다'''. 그저 성이 유씨이고 자(字)가 계(季)라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유방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후한[* 이라고는 해도, 이 시기는 이미 [[조조]]가 집권하여 위나라나 마찬가지였다.]의 학자 [[순열(후한)|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서부터인데, 후세 학자들이 《[[사기(역사책)|사기]]》, 《[[한서]]》에 주석하면서 한 인용으로, 발굴된 유물 자료들로써 대체로 옳다고 간주한다. 물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설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유방이 어렸을 당시에는 유계라는 호칭으로 통하다가, 즉위한 후 유방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초한전쟁을 모르는 현재의 대다수 사람들마저 유방과 항우라는 유명한 이름을 아는 실정과 달리 유방 본인에게 '방' 이라는 이름은 일생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본인으로서도 착 감기지 않는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소리.'''[* 하지만 원래 옛날 사람들은 본명인 휘를 잘 사용하지 않았고 보통 자나 호로 불렀다. 당장 유방과 항우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항우]]부터가 우(羽)는 휘가 아닌 자이며, 항우의 휘는 적(籍)이다.] 그런데 유방의 형제를 살펴보면 이 이름이 형제 간의 서열, 순서를 간편하게 나타내는 [[백중숙계]](伯仲叔季)를 붙여서 지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방의 형들로 , [[유백(전한)|유백]](劉伯)과, [[유중(전한)|유중]](劉仲)이 언급되는것을 보면 '유계' 라는 호칭이 어째서 생겼는지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케이스로 [[삼국지]] 시대의 많은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손견]]의 아들들인 [[손책]], [[손권]], [[손익]], [[손광]]의 자를 각각 백부, 중모, 숙필, 계좌로 썼으며, [[사마랑]], [[사마의]], [[사마부]], [[사마욱]] 형제 역시 자를 각각 백달, 중달, 숙달, 계달로 백중숙계에 맞춰 자를 지었다. [[공자]] 또한 형제 중 둘째였기 때문에 자를 중니로 썼다. 덧붙여 막내의 자에는 유(幼)를 붙이는데, [[사마의]] 막내 아우인 사마민의 자가 유달이었으며 [[마량]]의 막내 아우인 [[마속]]의 자는 유상이다. [[마량]] 또한 자를 계상으로 썼는데, 이것이 백중숙계에 맞춘 것이라면 마량은 형제 중 넷째이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씨 형제들의 자는 백상, 중상, 숙상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유방은 본래 개별적인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고, 그저 '유씨네 막내'정도로 통용될 수 있는 유계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학자 사타케 야스히코는 유방이 평민 출신이라 본래 이름이 없었으나 황제가 된 뒤에야 이름과 글자가 나왔다고 여겼다. 그러나 둘째 형 유중은 유희(劉喜)라는 휘가 알려져 있고, 이복동생 [[유교(전한)|유교]](劉交)는 유(游)라는 자가 따로 있었기에 모든 사람의 휘가 불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백중숙계가 대충 지은 이름 같아 보이지만 그게 정식 자나 이름인 예가 꽤 있어 그 유계라는 이름이 개별적인 이름일 가능성은 다분하다. 더욱이 유교가 유학자로, 특히 《시경》에 능한 인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집안 사람들 중에 이름이 아예 없는 인물이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즉 유방은 어린 시절 '막둥이' 정도로 불렸다는 얘기. 가까운 예로 올림픽 이전만해도 이름을 대충 짓느라(무성의하게 지어야 오래 산다는 믿음도 있고) 막동이, 막둥이, 막딸이 이렇게 짓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유방의 출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유방의 어머니인 유온이 연못가 근처에서 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신]](神)을 만났다고 한다. 그때 뇌성벽력이 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했는데, 근처에 있던 태공이 그 모습을 보자 유온의 배 위쪽에 [[교룡]](蛟龍)이 떠있었고, 유온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 사람이 유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