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제(전한)/생애 (문단 편집) === 한왕 즉위와 반격준비 ===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천하의 지배자가 된 서초패왕 항우는 각지의 제후왕을 분봉했는데]], 가장 위협이 되는 유방은 파·촉(巴蜀)의 벽지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관중은 6국을 제외하고 통일 이전의 진나라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파·촉의 왕이 되는 것도 '함양에 먼저 입성하는 자가 관중의 왕'이라는 선언을 지키는 선에 들어가기는 했다.]] [* 물론 이는 항우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초나라 회왕이 이 명령을 하면서 "관중왕의 자리는 사실은 파·촉의 왕을 말하는 거다."라고 할 리가 없으므로 당연히 하극상이자 심각한 왕명 위반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후 유방은 거병의 명분으로 회왕이 살해되었다는 것과 함께 이 사실 또한 두고두고 잘 써먹는다.] 파·촉 지역은 절벽수준의 높은 산맥으로 가로막혀서 잔도가 없으면 탈출 자체가 불가능한 감옥같은 지형인 데다 당시에는 아예 개발도 안 되어 있어서[* 파·촉이 제대로 개발되기 시작하는 것은 후한시대와 삼국시대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도 통행할 길도 없는 그야말로 야만의 오지로 당시에는 [[삼수갑산|정치범들을 유배보내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대표적으로 몇 십 년 전에는 노애의 일족과 여불위가, 초한전쟁 몇 년 뒤에는 팽월 등이 여기로 유배되었고, 이중 여불위는 자결했으며, 팽월은 여후에게 애걸하다가 살해당할 정도로 당대 중국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히던 지역이었다.] 이건 그냥 갇혀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이었다. 한반도로 치면 서울을 접수하면 서울과 경기도 지부장 자리를 준다는 약속을 배도 없이 연평도나 백령도에 비할 곳을 던져주고 약속은 지켰다는 식의 태도는 당연히 돌아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 더 열받는 사실은 함양에서 바로 촉으로 들어가게 되어 고향 땅인 풍·패는 커녕 가족 얼굴조차 못보고 들어가야 했다. 때문에 유방 뿐만이 아니라 [[주발]](周勃), [[관영]](灌嬰), [[번쾌]] 등 부하장수에 병사들도 대부분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려야 했으니[* 유방과 부하들은 당시 진나라 동쪽 끝인 지금의 [[장쑤성]] 쉬저우시 지역인 패현 출신들이었고, 부임해야하는 파·촉은 지금의 쓰촨성으로 진나라 서쪽 끝 지역이었다.] 크게 분노했다. 유방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번 항우랑 싸워볼까?"''' 라는 생각까지 품었고 분노한 장수들도 동의했지만, 소하는 '''"이렇게 되긴 했어도 죽는 것보단 낫다"'''고 설득했다. 네가 먼저 죽어볼 테냐고 소하에게 화를 내던 유방이었지만, 소하가 '''"지금 감정에 휩쓸려 항우와 싸운다면 개죽음이나 다름없지만 뒷날을 기약하며 인내한다면 분명 기회가 올 것입니다."'''라고 달래자 결국 그 의견에 동의하고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한서》 <소하전>의 기록.] 유방 입장에서 더 열받는 일은, 본래 유방의 군단은 10만명에 육박했는데 항우는 그중 30,000명만 유방을 따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개별적으로 유방을 따르는 사람들도 몇만명이나 되었다.] 이래서 차라리 한 판 뜰까 했던 것. 그 정도로 항우는 아직 유방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량은 잔도(棧道)를 불태우라고 충고해서 항우의 의심을 덜게 하였다.[* 터널이 없던 시절 산악 행군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참고로 저 당시 유방이 갔던 길은 오늘날 시퀸링(서진령) 터널이라고 해서 중국이 온갖 토목 기술을 다 들이부어서 뚫은 장대 터널로 사천 지방과 시안 시를 잇는 교통로를 현대화했고, 그전에는 재래식 열차로도 19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잔도를 복구하는 게 또 보통 일은 아닌지라] 그러나 유방을 따라 한중 지역으로 들어가는 대다수의 병사와 장수들은 중국 동쪽 사수군 패현 출신으로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데다 이런 밀림 구석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까 두려워하며 그 길이 너무나도 험하여[*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은 <촉도난>이라는 시에서 파촉으로 통하는 길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촉으로 가는 길은 하늘로 향하는 길보다 더 어렵다." 심지어 이태백은 '''촉이 고향이다!''' 현지민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대체...] 도망치기 시작했고, 병사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러제꼈다. 유방으로서는 괴로운 나날이었는데, 어느 날 소하마저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방은 "어이쿠, 이제 난 망했구나!" 했지만 소하는 달아난 게 아니었다. 유방은 돌아온 소하를 보자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화가 나서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도망갔던 것인가?" > >소하가 답했다. "신은 감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도망친 자를 쫓았을 뿐입니다." > >유방이 물었다. "그대가 뒤쫓아 갔던 사람이 누구인가?" > >다시 소하가 답했다. "치속도위 [[한신]]을 뒤쫓았습니다." > >그러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꾸짖으며 말했다. "내가 관중에서 남정으로 오기까지 그렇게 많은 장졸들이 도망쳤는데 여지껏 한 명도 뒤쫓지 않다가 어찌하여 한신만을 뒤쫓아 갔다는 말인가? 한신을 쫓아갔다는 것은 거짓이로다." 그러자 소하는 자신이 한신을 뒤쫓은 이유를 유방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다른 장수들이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한신과 같은 인물은 걸출해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왕께서 만약 한중에서 계속 왕 노릇을 하시려면 한신을 쓸 바 없거니와, 만일 천하를 취하고자 하신다면 한신 말고는 그 일을 상의할 인물이 없습니다.''' 다만 왕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에 달려 있습니다." * 이때 소하의 설명 중 '至如信者 國士無雙'[* "한신은 국사로서 둘도 없는 사람입니다.", "나라 안의 인재(선비) 중 한신에 비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등으로 해석이 갈린다. '국사(國士)'의 해석에서 갈리는 것.]으로부터 나온 말이 [[국사무쌍]](國士無雙)이란 고사성어를 만들어냈다. 즉, 한신이 없으면 우린 여기 박혀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소하의 추천으로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은[* 당시 한신이 아무런 활약도 하지 않았음을 생각해보자. 아니, 그 이전에 한신은 그에게 시비를 걸던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일로 인해 굉장히 폄하를 당하던 인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무엇보다 한신은 유방의 수하로 들어온지 길게 잡아도 체 세 달도 되지않는 신입 중의 신입이었다. 실제로 한군의 많은 장수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대장군이 될 것이라고 여기다가 한신이 대장군이 되자 엄청나게 놀라워했다.] 유방은 한신과의 대화에서 용기를 얻었고, 몇 달 동안 세력을 정비해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