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관동별곡 (문단 편집) == [[정철]]의 [[가사]] == [include(틀:정철)] [[조선]] 중기의 문인 [[정철]]이 남긴 가사. 이상과 현실의 대립에서 '''현실적 가치를 택해 관찰사를 하겠다'''는 뜻이다. 주 내용은 만물을 관찰하며 [[선조(조선)|임금]]을 찬양하고 [[선조(조선)|임금]]에 충성하는 뉘앙스가 대부분. 하지만 이걸 공부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점은 상당수가 인정한다. [[백광홍]]이 지은 '관서별곡'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서 '송강가사'에 전한다.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된 저자가 [[관동팔경]]을 유람하면서 그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고 [[선정#s-6|올바른 정치]]를 할 것이라 다짐하는 내용의 장편 가사다. 정철을 옹호하는 측은 실제로 정철은 [[강원도]]와 그 뒤에 간 [[전라도]]에서 [[선정#s-6]]으로 이름이 높았다며 옹호한다. 당시 [[교통]]이 발전하지 않고, '''해발 1,500m가 넘어가는 [[백두대간]] [[산]]을 넘어다녀야 하는''' [[강원도]]의 지형을 생각해보자. 지금도 쉽지 않은 게 강원도 순행인데, [[조선시대]]에 [[강원도지사]](관찰사)가 산을 넘어다니며 각 지방을 순회하고 그것을 노래로 남긴 것이다. 일단 당시 도민들은 '''"우리 마을에 도지사님 오신다!"'''는 것만으로 정철에 대한 인기가 높았을 것이다. 살면서 한 번 보기 힘든 [[높으신 분]]이 마을에 직접 방문하는 것이니까. 관동별곡을 보면 진짜 [[강원도]]의 모든 지방을 순회했고, 지방의 명물이나 [[관광]]지들도 모조리 방문하면서, 도민들의 민심 청취 및 [[민원]] 처리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정철의 이런 행보는 이전까지의 강원도 관찰사(도지사)들과 분명히 달랐다. 그래서 당시 강원도민들의 정철 지지율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대신에 도지사가 방문하지 않는 동안 지역에서 왕 노릇하던 동네 [[아전]]들과, 안 그래도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전 지방 순회를 강행하는 정철을 수행해야 할 [[비서]]진들은 죽어나갔지만 말이다. 그러나 반론도 많은데 당시 [[정철]]이 부임하던 [[강원도]]의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로, 정철이 부임한 [[선조(조선)|선조]] 13년에 강원도는 초여름에 [[냉해]]피해를 입었고 바로 다음 달에는 [[홍수]]피해에 시달린 탓에 도 전체가 흉작, 기근에 시달리며 [[한양]]에서 구휼과 면세를 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금강산]] 같은 유람지까지 가서 논 행태가 결코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작중에서 5월에 동해로 놀러간 걸 묘사하고 있는데 바로 전달인 4월달에 회양·평창에서 심각한 냉해 피해가 심각하다고 정철 본인 입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3월의 금강산 유람은 사정을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동해 유람은 변명의 여지도 없다. 거기에 잘했다던 전라감사 시절에도 전라감사직을 마치고 [[도승지]]로 승진하자마자 [[사헌부]]에서 바로 탄핵에 들어갔고 결국 정철은 사직하고 다시 [[함경도|함경]]감사 외직을 돌아야했다. 정철의 이시기 업적으로 불리는 훈민가도 내막을 들여다 보면 정철이 살아있던 시기나 정철이 죽고 서인이 집권한 인조시기에도 별 두각을 안보이고 완전히 잊혀졌다가 정철이 죽은지 100년 가까이 지난 효종때까지 잊혀지다가 이후원이 발굴해서 알려진 경우다. 결국 옹호측이 말하는 정철의 선정은 아무리 좋게 바줘도 추측의 영역이고 당시 기록을 보면 적어도 정철이 부임할 때 강원도 상황이 유람하면서 노닥거릴 정도로 녹녹한 건 아닌 게 드러나며, 이후 승진도 막히고 제법 오랜기간 외직에서 돈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강원감사 시절에 특별한 두각을 보이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 기간이 되면 출제 우선 순위에 꼽히는 고전 문학이다. 그래서 1998년도[* 당시 출제된 문항을 살펴보면, 관동별곡에 빈칸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절한 시구는? 으로 물어보기도 하였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언어 영역|수능]]에 2번이나 출제되었고, 평가원 및 교육청 모의고사에도 수시로 출제된다. 평가원 모의고사 및 수능에 '''4번 이상''' 출제된 유일한 고전 문학 작품이다.[* 1998수능, 2010 6평, 2015 수능, 2021 6평][* 현대 문학 작품 중에는 [[관촌수필]]이 4번 출제되었는데, 이건 수능에 무려 '''3번''' 출제된 작품이다.] 2010년 6월 모의평가에서도 관동별곡이 출제되었는데, 고전이 참 오래간만에 원문으로 출제되어 학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2014년 11월 모의평가에서도 출제되어 역시 학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참고로, 약간 다르지만 1997년도 수능에서는 수리탐구 2 영역의 지문에 언급된 적[* 당시 한국지리 문항에 언급됨.]이 있다고 한다. 수능 출제 성향으로 봤을 때 약간 특이한 편. 그리고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15학년도 수능]]에 마침내 국어 B형의 고전문학 지문으로 나왔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수능완성]]에 실리면서 출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인 [[2021 수능/의견#s-2.1|2021학년도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 출제되었다. 수특 직접연계가 아니라 작가 연계인것으로 확인되며 고어 원문으로 출제되지는 않아서 해석에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었고 문제 난이도 역시 그렇게 높지 않았다. 다만 관동별곡을 처음 본 수험생들은 잘 해석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여러 재외국민특별전형 준비학원 국어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으로는 '매년 인서울 대학 중 어딘가는 반드시 나온다'라고 하며 격년 정도로 다른 대학들에서 나온다고 한다. 결국 2007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지역균형선발전형 면접에서 [[헬게이트|'''암송하라''']]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외우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고. 아직도 암송하는 노인 분들이 계시고, 40대 이상 중에서도 암송 가능한 사람들이 꽤 된다. 시험에 너무 자주 나오니 통째로 외우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도]] 내 상당수 고등학교에서는 작품의 배경 탓인지 중간, 기말고사에도 출제 빈도가 높다. 많은 이들에게 노력을 요하는 작품인 것은 맞지만 '''국어 변천사 연구에서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당시 사림의 신분을 가진 이가 한글(당시의 경우 언문)을 사용하여 완결시킨 몇 안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출사표]]가 중등교육에서 한국의 관동별곡과 대등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7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상)에 [[https://blog.naver.com/jbh8170/221989786814|수록되었다]]. 당시에 국어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였기에, 어느 학교에서든 고등학교 1학년에 관동별곡을 배웠다. 2015개정 신사고 '''고1''' 국어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해석본도 없이 그대로 나와[* 하술할 현대어로써의 해석과 풀이가 없다는 뜻이지 그래도 특정 단어에 [[각주]]를 달아 의미를 써놓긴 했다. (예시 - 뉴하쥬: 신선이 먹는다는 술 등.) 그러나 '''일부도 아니고 전문이 수록되어 있으니''' 망정이다.] 학생들의 혼을 탈출시키게 만들었으며,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였다. ~~게다가 시험 범위로 출제까지 되니... 선생님들이 문제의 난이도 조절을 잘 해야 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