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찌 (문단 편집) === 초기 === 구찌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피렌체]]에서 설립하며 시작되었다. 1897년 [[런던]]의 최고급 호텔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던 구찌오는 상류층 손님들의 고급 가방에서 영감을 얻고 1902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가죽 용품과 작은 가방을 취급하는 첫번째 구찌 매장을 오픈하였다. 1930년대에는 상품라인을 더욱 확장하여 다양화 시켰으며 구찌의 주 고객층인 귀족들의 승마 용품에 대한 수요로 인해 독특한 홀스빗 아이콘을 개발하게 된다. 1938년에는 이탈리아 쇼핑 중심지 [[로마]] 콘도티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이던 이탈리아의 자재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가죽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일본에서 수입 가능하던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를 계기로 구찌를 상징하는 여러 제품 중 최초의 제품이 된 "뱀부 백"[* 대나무에 광택을 입힌, 말 안장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을 만들게 된다. 대나무 백은 당시 귀족과 유명인사의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들고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오늘날까지도 애장품으로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뱀부 백은 현재도 구찌의 [[가방]]중 가장 고가 제품이며, 구찌를 상징하는 가방이다. 가방 외에도 시계, 벨트, 손잡이 등 여러 곳에서 활용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51년에는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 레드, 그린으로 이루어진 삼선 마크 "더 웹"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구찌의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되고 있는 디자인으로 가방, 신발, 벨트, 악세사리 등 온갖 곳에서 활용되는 구찌를 상징하는 디자인 중 하나이다. 1953년 창업주 구찌오 구찌가 사망하고 셋째 아들 알도 구찌와 넷째 아들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눠 가졌다. 알도 구찌는 특유의 감각으로 구찌의 성공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아버지 구찌오 구찌에서 영감을 얻은 맞물린 GG 로고를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현재의 구찌 로고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후 [[런던]], [[파리(프랑스)|파리]] 및 [[베벌리 힐스]]에 매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 진출도 본격화해 [[도쿄]]와 [[홍콩]]에 매장을 오픈하였다. 1977년, 60년대에 오픈했던 베벌리 힐스 매장을 구찌 미술관[* 초고가 구찌 제품을 전시한다.]으로 재개관했다. 1981년에는 [[피렌체]]에서 창사 이래 최초로 런웨이 패션쇼를 개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