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국주의 (문단 편집) === [[북한]]의 [[주체사상]], [[선군정치]]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Propaganda_of_North_Korea_%286073871366%29.jpg]] [[북한]]의 군국주의[* 엄밀히 말하자면 [[선군정치]]다.] [[미화]]용 [[프로파간다]] [[벽화]]. 벽화에 나온 사람들이 [[군인]]들이 아닌 [[청소년]]들인 것에서부터 북한체제의 정신병적인 군사력 예찬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북한]]은 나라 자체가 군국주의로 운영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명목상의 나라가 출범했을 때만 하더라도 과거의 [[일본 제국]]에 비견할 만한 정신병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물론 정부가 출범하는 것보다 군대가 먼저 생긴 것부터 싹수가 노랗긴 했지만, 공산국가 특유의 [[당군]]체제와 엄격한 [[관료제]]의 통제 속에서 북한군은 [[노동당]]에 엄격한 통제속에 있었고, --명목상--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였기에 인민들의 생업이 군사력강화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에도 [[인천상륙작전]]이후부터 [[한국군]]의 총 병력 수를 넘긴 적이 없다. 당시 북한인구가 1000만 명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북한]]이 현재의 정신병적인 군국주의국가화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1956년의 [[8월 종파사건]]에 이어서, 1967년의 [[도서정리사업]]으로 [[민주주의]]적 기반을 전부 갈아엎고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를 완성한 이후이다. 이 때부터 노동당은 김일성잎파의 거수기가 되었고, 인민군은 김일성의 사병집단이 되었다.이러한 사건의 진행 속에 1962년에는 [[4대 군사노선]]이라는 결의를 발표했고, 이를 기반으로 1970년에는 [[주체사상]]과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유일영도체계(김일성 신격화)]]를 완비하게 된다. 독재체제완성과 군국주의적 이론인 주체사상을 완성함으로서 군국주의화에 박차를 가하던 [[북한|북한정부]]과 [[김일성]]은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에게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넘긱기 위하여 여러 사건을 공작했고, 그 중에 하나였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미국의 분노를 사서, 북한정부가 국가방위를 경제보다 우선시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군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것은 한국의 군국주의가 해소단계를 밟기 시작한 1990년이다. 1994년에 김일성의 사망과 김정일의 집권했을 때, 마침 시작된 [[고난의 행군]]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파탄에 의해, 나라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정권유지를 위해서 [[선군정치]]를 시작하는데, 이 [[선군정치]]는 군을 최우선시한다는 이론이며, 현재, 북한의 '''[[병영국가]]'''체제를 완비한 마지막 비수였다. 한국이 경제발전으로 [[군국주의]]기조를 상실하게 되는 것에 반하여, 북한이 경제적인 나락과 함께 [[군국주의]]기조가 돌이킬 수 없을 수준으로 확대된 것을 보면 국가경제와 군국주의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김정은]]정권 시기에 들어서 군대보다 민정을 우선시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미사일 발사를 김정일 시기보다 자주한다든가 [[서부전선 포격사건]] 등 강경한 대남 도발, 핵개발의 가속화 등으로 '선군'이라는 말만 버렸지 여전히 이전의 기조에서 크게는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