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마 (문단 편집) === 전장의 주역 === 고대 전차 시대부터 썼던, 기병의 역사와 함께 한, [[인간]] 군대가 사용한 [[군인|인간을 제외한]] 대표적인 [[동물]]이다. 처음에는 '''덩치도 작고''' 타는 방법도 어려워서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타는 [[유목민족]]이 아닌 이상 [[전차(고대 무기)|전차]]를 운용하면서 둘 이상의 말이 끄는 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안장]]과 [[등자]]처럼 보다 편하게 말에 탈 수 있는 마구가 등장하였고, 결정적으로 [[말(동물)|말]]도 품종개량을 통해서 체격이 커지면서[* 본격적인 군마는 보통 400~700kg씩 나갔으며, 심하면 1톤 가까이 나간다!] 여러가지 마구와 함께 사람을 싣고도, 심지어 말이 [[마갑]]을 걸치거나 기수가 갑옷을 입어도 전력질주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전차 대신 말에 직접 타는 [[기병]]이 대세가 되었고, 기병 자체도 [[경기병]]과 [[중기병]]으로 분화하였다. 보통 세계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까지는 기병대가 존속했으므로, 군마 역시 그때까지 각국에서 사용되었다. 사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참호전]] 때부터 [[전투]]의 주력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정찰, 통신, 연락 등의 임무 수행과 병참, [[보급]]에는 여전히 말을 이용했다. 오히려 전쟁의 규모가 커져서 수요도 더 늘어났으며, [[철도]] 덕분에 막대한 양의 건초와 식수 소모를 감당할 수 있어서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대규모의 군마를 운용할 수 있었다. 1차대전 4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는 매년 수십만필의 군마를 수입해야 했고, 손실한 군마만 약 9백만 필에 이른다.[* 민간에서는 이 시절에 전차(트램)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전에는 말이 끄는 마차가 더 인기있었는데, 전쟁으로 말과 마부들이 징집되면서 트램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참호전으로 고착된 서부전선과 달리, [[러시아 제국]]과 독일이 맞서 싸우던 동부 전선에선 기병들을 주축으로 한 [[기동전]]이 벌여졌고 이후 [[적백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찬카]]라는 군마가 끄는 기관총 탑재 수레도 등장했을 정도. 2차대전 초~중반에도 말은 여전히 중요한 운송수단 및 보급수단이었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후방 [[게릴라]]나 적 패잔병 토벌 등의 임무에 기병대가 말을 타고 [[기관단총]]이나 [[카빈]] 등을 다루며 싸우기도 했다. 이런 경우, 총탄에 취약한 말을 보호하려고 사람이 쓰는 [[방탄복]]을 몇 개 합쳐서 입히기도 했다고 한다. [[독일 국방군|독일군]]은 통념과는 달리 기계화 비율이 높지 않아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부대가 많았다.[* 당시 실제 기계화 비율이 가장 높았던 군대는 미군이다. 독일군은 [[Sd.Kfz. 251|하노마그]] 하프트랙은커녕 그냥 트럭도 부족했는데, 미군은 대부분의 사단이 '''[[M3 하프트랙]]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러고도 썩어 넘친 나머지 [[무기대여법]]으로 영국군과 소련군에도 대량으로 뿌려댔다.''' 추가로 미국은 소련에게 '''트럭과 지프 41만대'''를 추가로 뿌렸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도 2차대전시기까진 완전 기계화에는 실패하여 소수나마 말을 탄 기병대가 남아있었고 필리핀 바탄 반도 방어전에서 기병대가 돌격을 수행해 일본군을 격퇴해내는 전과를 내기도 했다.] 기갑사단과 [[기갑척탄병]] 사단, [[공군 야전사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보병사단은 말이 병참수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병사단에 배속된 [[트럭]]은 150mm 중곡사포의 견인이나 [[군단]]~[[연대]] 수준의 물자수송에나 배당되고 보병들은 일부 전투단을 제외하면 걸어서 행군해야 했으며, 심지어 105mm 야포도 말들이 견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러시아 특유의 지옥 같은 [[라스푸티차]]와 겨울 혹한 속에서 수많은 군마가 희생되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포위된 독일 6군은 굶주린 나머지 군마들을 먹어치워서 뒤늦게 도착한 후퇴 명령에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결국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소련군]]도 [[T-34-85|T-34]]를 위시로 한 수많은 전차들을 생산하고 무기대여법으로 상당한 열차와 트럭 등을 받았음에도 기병 부대들을 애용했는데, 기갑부대가 빠른 기동력으로 독일군을 포위시킨 것은 좋은데 후속 보병부대가 그 기동력을 못따라가 포위망이 강화되기도 전에 독일군의 반격에 의해 무너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서였다. 그래서 기갑부대 못지 않고 보병보다는 확실히 빠른 기동력으로써 포위망을 강화할 수 있는 기병부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카자크]] 기병부대가 포위된 독일군을 잔인하게 도륙하기로 소문났다. [[이반 코네프]]도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 [[대한민국 국군]] 역시 [[6.25 전쟁]]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기병]]이 존재하였다. 말은 주로 [[일본]] [[순사]]들이 이용하다가 광복 후에 남겨진 것들을 회수하여 편성했다고 한다. 이들 기병대는 전투를 수행하면서 지속적으로 군마를 상실하였고, 이후 소모된 군마를 재보급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 부대가 해체되어 기갑부대에 편입되었다. 특히 [[장철부]] 소령이 이끈 [[독립기갑연대]] 제2기병대대의 활약은 [[미군]] 전사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적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펼쳐 진격을 늦추고 [[보병]]에 대한 돌격 전술로 화려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육군이나 [[로디지아군]]도 게릴라 소탕을 위해 기병을 상당한 수준으로 운용했었다. 애당초 이 지역은 철도도 [[협궤]]이고 도시를 제외하면 도로망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말을 대량 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군]]과 [[몽골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한 산악지역에서 군마를 운용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