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궈타이위안 (문단 편집) == 선수시절 == [[대만 육군]] 야구부에 입대한 1982년 [[야구 월드컵]]에서 대만의 대표팀 투수로 활약하며 각국 스카우트들의 눈을 끌었고, [[1984 LA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꺾는데 기여하고 팀을 LA로 이끌었다. 본선에서 동메달 획득에 성공했고[* 일본이 금메달, 미국이 은메달, 대만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은 준결승전에서 미국에 2-5로 패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선 대만에 연장 14회초 3실점 하는 바람에 0-3으로 패했다.] , [[세이부 라이온즈]]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프로 1년차인 1985년에 노히트 노런 달성 및 9승을 획득했다. 프로 2년차인 1986년은 수석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모리 마사아키]]가 궈타이위안을 선발에서 구원으로 전환시켜 16세이브를 올렸다. 1987년에는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했고 [[NPB]] 첫 두자리수 승수(13승)를 기록했다. 1988년에는 전년도와 같은 13승을 기록했으며, 1989년에는 선발진을 지탱하던 [[히가시오 오사무]]가 은퇴하며 그를 대체할 투수로서 기대되었다. 1991년에는 본인의 한 시즌 최다승인 15승을 기록했다. [[와타나베 히사노부]], [[쿠도 키미야스]]와 함께 명실상부 세이부 왕조 시기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들 중 하나였으나, 손목 부상으로 1996년부터 하락세를 기록하기 시작한 뒤 1997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13시즌 통산 기록은 272경기 등판, 117승 68패 18세이브, 평균자책 3.16 이다. 117승은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사상 최다승이다.[*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투수 중 NPB 통산 100승을 달성한 투수는 곽태원 외에도 동시기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한 대만인 투수인 [[카쿠 겐지]](106승)와 1960년대에 활약한 [[진 바키]](100승), [[조 스탠카]](100승) 단 네 명 뿐이다.][* 80년대 후반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3명의 대만인 투수 곽태원(카쿠 타이겐, 세이부), 곽원치(카쿠 겐지, 주니치), 장승웅(소 카츠오, 롯데)은 대만과 일본 야구계에서 '이곽일장'으로 불렸다. 이들 중 곽원치와 장승웅은 나중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