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니 (문단 편집) == 역사 == 역사적으로 유구한 [[말리 제국|말리]]·[[송가이 제국|송가이 왕조]]가 이 땅에 들어섰고, 16세기 풀라인들의 지하드 이후 서서히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기니도 세네갈, 감비아와 함께 [[졸로프 왕국]]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후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기니는 [[가나]]와 더불어 독립 투쟁을 활발하게 이어나간 나라였다. [[1958년]] [[10월 2일]]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독립하였고,[* 참고로 프랑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떠나면서 [[병원]], [[학교]] 등 식민지 시절 만들어놨던 모든 [[사회기반시설]]들을 다 부숴버리고 떠났다.[[https://www.youtube.com/watch?v=vxzxxjzwZn0|6분 10초부터]]] 프랑스가 대안으로 내세운 [[프랑스 공동체]]에서 탈퇴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샤를 드골]] 대통령이 프랑스 자본을 전부 철수시키면서 급속히 경제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초대 대통령 [[아메드 세쿠 투레]](Ahmed Sékou Touré)는 [[소련]]과의 우호 정책을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과 서방의 원조와 투자를 계속 받았다. [[1984년]], [[아메드 세쿠 투레]]가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받던 중에 사망하자 '''[[대령]]'''이었던 [[랑사나 콩테]](Lansana Conté, [[1934년]] [[11월 30일]] ~ [[2008년]] [[12월 22일]])가 대통령이 되어 그나마 투레보다는 온건했다고 평가받긴 해도 24년간 독재정치를 펼쳤다. [[2008년]] [[12월 22일]], 그가 죽은 뒤 이번에는 '''[[대위]]'''였던 [[무사 다디스 카마라]](Moussa Dadis Camara, [[1964년]] [[1월 1일]] ~ )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2009년 9월 28일에 수도 [[코나크리]]에서 군사정권에 항의하며 경기장에 모여 항의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며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얻었다. 당시 학살은 매우 잔혹했다고 전해지는데, 대통령 경호원들과 보안군들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거나 최루탄을 투척하는 것은 기본에 총검으로 찌르거나 특히 [[AK-47]] 소총을 발포하여 대규모 사망자가 나왔다. 게다가 군인들은 경기장의 문들을 잠가 탈출을 어렵게 해 많은 사람들이 탈출하다가 압사하기도 했으며, 경기장을 빠져나와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격하며 총기를 발포하거나 총검, [[마체테]]로 찔렀고, 시민들에게 카마라를 지지하는지 묻고는 아니라고 말하면 즉시 총살했으며, 특히 여성들을 '''대낮에 공개적으로''' 강간, 윤간하기도 하여 무려 109명이 강간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날의 학살로 '''단 하루 만에''' 5만 명에 달하던 시위대 중 최소 157명이 죽고 1,253명이 다쳤으며 수백 명이 혐의 없이 투옥되었으나, 정부는 '56명이 죽었고 그것도 대부분이 도망치는 시위대에게 짓밟혀 죽은 것이다'라고 허위 발표를 했고, 영안실에 있던 시실들을 빼돌려 암매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학살에 참여한 군대는 사건이 외국에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인 기자의 장비를 뺏고는 부쉈으며, 대놓고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반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야당 지지자들이 무장을 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던 것은 물론, 경기장에서 야당 지지자들에 의해 부상을 입은 보안 요원도 없었다고 한다.] [[https://www.hrw.org/news/2009/10/27/guinea-september-28-massacre-was-premeditated|2009년 코나크리 학살과 관련된 휴먼라이츠워치의 자료]] 카마라는 이 학살 이후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쇼날]](RFI)와의 인터뷰에서 '이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국가 원수인 나조차도 군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시위 당시에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며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카마라는 그로부터 고작 2개월 뒤인 동년 12월 3일에 측근인 디아키테 중위에 의한 암살 미수 사건을 겪으며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치료를 위해 모로코로 후송됐고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부르키나파소에서 요양 겸 망명했다. 2016년에는 자신의 당인 '민주주의와 발전을 위한 애국군' 의장직에서도 완전히 물러났으며, 2022년 9월 27일, 즉 2009년의 학살의 13주기가 되기 하루 전에 2009년 학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면서 투옥되었다.] 결국 국방장관인 세쿠바 코나테가 임시 대통령직을 이어 받아 1년간 취임했고 2010년에 민정으로 이양하였다. 2010년 선거에서 야당 지도자인 알파 콩데와 전 총리인 디알로가 맞붙어 알파 콩데가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8060028911100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8-06&officeId=00028&pageNo=11&printNo=3574&publishType=00010|1990년대 말, 이 나라 출신 소년 두 명이 비행기로 벨기에 밀입국을 시도하려다가 얼어죽은 사건이 있었다]][* 정확히는 아프리카의 참혹한 실상을 유럽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결행한 것. 실제로 시신에서 자신들 및 아프리카의 실상에 대해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내용의 편지도 발견됐다. 법적으로는 밀입국이 맞지만 아프리카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고자 어린 소년들이 죽음을 자초하면서까지 행동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바로 매스컴을 타 전세계에 널리 퍼진 이 사건은 정작 기니에는 바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너무나 가난해서 일간지 하나조차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알래야 알 수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나라 정부는 예상대로 "별 관심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2014년 에볼라 확산]]으로 인해 오랫동안 특별여행경보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가, [[2017년]] [[3월 14일]]에야 해제되었다. 그리고 [[2016년]] [[8월 16일]]에 기니에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0만 명의 [[시위]]가 발생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621197|#]] 알파 콩데 대통령이 헌법을 고쳐 3선에 도전하면서 다시 정치적 혼란이 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51966?sid=104|#]] 10월 18일에 열린 총선에서 알파 콩데 대통령이 승리했지만[[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965014|#]], 이에 반발하는 시위가 발생하고 진압 과정에서 21명이 사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972186|#]] [[11월 7일]], 기니 헌법재판소가 알파 콩데의 3선을 확정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1999083|#]] 2021년 1월 말에 기니에서 에볼라가 발견된 뒤, 사망자가 4명 발생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2200194?sid=104|#]] 이에 에볼라 유행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201239|#]] 에볼라가 발생하자 [[세계보건기구]]는 며칠 내로 에볼라 백신 1만 1천 회분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214129|#]] 4월 2일에 에볼라 감염자가 발견되면서 에볼라가 확산되고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2305008|#]] 자세한 내용은 [[2021년 기니·콩고 에볼라 전염 사태]] 참조. 기니에서 [[마버그열|마버그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처음 발생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3&aid=0010657074|#]] 2021년 9월 5일(현지시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세한 내용은 [[2021년 기니 쿠데타]] 참조. 2022년 2월 27일, 서아프리카 지역블록과 유엔 사절단이 신군정과 대화를 위해 방문했다.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203168784i|#]] 2022년 2월 28일에 기니 서부의 비인가광산이 무너져 최소 18명이 사망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3026927|#]] 2022년 3월 16일, 기니 신정권이 중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미개발 철광석 광산 개발을 중단시켰다.[[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203168784i|#]] 2022년 10월 23일, 기니 군정이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시위 속에 2025년에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1022039500099?input=1195m|#]] 2022년 10월 25일, 서아프리카 기니만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2명이 탄 선박이 [[기니만 해적|해적]]에게 끌려갔다가 하루 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16547?sid=100|#]] 2023년 1월 13일, 기니 공화국은 새로운 국가 브랜드 이미지인 님바(Nimba)를 공개했다. [[https://www.jungle.co.kr/magazine/20491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