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강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중학교 시절부터 투타 양면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던 선수이며, 그때부터 연고 팀 [[KIA 타이거즈]]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KIA 타이거즈|KIA]]의 성골이라 할 수 있는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해 고교 생활을 하면서 중심 타선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2학년 당시 [[황금사자기]]에서 0.538의 맹타율을 보이며 팀 우승에 일조해 두각을 드러냈었으며[* 우승 당시 3학년 [[강정호]], [[나승현]], [[김성현(1987)|김성현]]이 주축이었다. 준우승팀은 [[이천웅]], [[임치영]], [[빡코]]가 있던 성남서고.], [[2006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할 당시에도 4번 타자 겸 팀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고교 시절의 김강은 [[박병호]]같은 스타일의 파워 히터가 아닌 [[김현수(1988)|김현수]]같은 스타일의 중장거리 히터에 가까웠다. 좋은 결의 스윙에 힘이 좋아 장타를 양산하는 스타일. 광주제일고 2학년 당시만 해도 당연히 [[KIA 타이거즈|KIA]]에서 1차 지명을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3학년 때 이렇다 할 좋은 성적을 보여 주지 못한 탓에 밀렸다. 일설에는 변화구 대처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오랜기간 그를 지켜본 KIA에서 그냥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고는 하나, 보다 정확한 이유를 들라면 자존심이 센 김강과 김강 아버지의 기질을 들 수 있다. 실제로 2차지명 1라운드 밑에서 지명되면 대학에 가거나 어떻게든 [[미국]]에 가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