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수(야구) (문단 편집) == 여담 == * 드라마 [[부활(드라마)|부활]] 14회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동 드라마에 출연하였던 탤런트 [[함석훈]][* [[KBL]]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장내 아나운서로만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그 사람 맞다.]과 친분이 있어 촬영하게 되었다. * 드라마 [[질투(드라마)|질투]]에서 김동수가 홈런 친 장면이 나왔다. * 레전드 40인 올스타에 선정 되지 못한게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41위~50위 명단에도 없다. * 2011년 1월 25일 방송된 [[MBC 표준FM]]의 장수 프로그램, [[싱글벙글쇼]]의 청취자 참여 문제의 답을 맞춰냈다. [[파일:attachment/ahn2.gif]]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6cz82003_7.jpg|height=150]] [[파일:attachment/김동수(야구선수)/6_tinas1412.gif]] * 2006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도중 [[안영명]]에게 분노의 싸대기를 날리기도 했다. 안영명이 김동수의 등짝으로 날아가는 공을 2연속으로 던졌다.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2번째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가니 진실은 던진 당사자만이 알겠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양대 시절 후배였던 [[구대성]]이 빈볼을 지시했다고 한다.] 당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던 상황. 그리고 마운드로 달려나가던 김동수는 너무 흥분했는지 도중에 넘어져서 더 격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자 벤치에 있던 [[송진우(야구)|송진우]]에게 플라잉 니킥을 등짝에 맞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확하게는 김동수가 송진우의 니킥에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었는데 [[심광호]]가 얼결에 어느정도 블로킹을 한 모습이 된데다가 [[한화 이글스]]에서도 뛰었던 [[송지만]]이 엉겁결에 니킥의 희생자로 같이 엮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싸우려는 것도 아니고 말리러 나왔다가 봉변 당해서 송지만이 많이 당황했다고 한다. [*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김동수의 은퇴 기념으로 송진우가 달려나와 등에 플라잉 니킥을 갈긴다.] 당시 양 팀을 대표하던 최고참 선수 두 명이 (김동수, 송진우) 뜨거운 파이팅을 선보이는 등 인상깊은 벤치 클리어링이었기에 이후에도 자주 인구에 회자된다. * 입단 동기인 [[이병훈(야구)|이병훈]] 해설위원이 사사구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MBC, LG 시절에 함께 선수 생활을 했을 때의 일화로 일 년에 홈런을 한 자릿수밖에 치지 못했지만[* 이 부분은 이병훈의 오류. 김동수는 LG시절 부상이 있었던 91년과 방위 출전으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구장]]에서만 출장하였던 94년을 제외하고 모두 두자릿수 홈런을 때린 대표적인 슬러거 포수였다.], 그게 전부 다 잠실구장 XX존[* 당시엔 외야에 XX존이 있어서 이쪽으로 홈런을 치면 LG전자제품을 제공하거나 상금을 주기도 했다.]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결승타]], 결승득점 등으로 받는 보너스를 가장 많이 받은 선수도 김동수라고. * 프로 입단 첫 해와 2년차까지를 빼고는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현역 내내 등번호 2번을 고집했다. 입단 초기에 2번을 달지 못했던 것은 감독이었던 [[백인천]]이 2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외모만 보면 마냥 순할 거 같은 사람좋은 인상이지만 실제 성격은 딴판으로 야구계에서도 성깔이 격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벤치 클리어링 때마다 상대투수를 향해 달려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류택현]]이 [[OB 베어스]] 소속이던 시절에 사구를 맞고난 후 힘이며 성깔이며 어디가도 안 밀리는 [[타이론 우즈]]의 태클에 그대로 고꾸라진 굴욕도 당했다. 류택현이 그 후 LG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김동수에게 "그 때 자기가 동수 형 때문에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을 정도. 위에 언급된 [[안영명]] 빈볼 사건 때도 마찬가지로 그의 격한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추가로 이 빈볼은 구대성이 지시했다고 한다. 이유는 한양대 신입생 시절 김동수에게 쌓인게 있었는지 얄미워서 안영명에게 시켰다고 말했다.[* 스톡킹에서 구대성이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진짜 이유는 당시 경기에서 현대가 칠 수 없는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이건 분명 현대 쪽에서 싸인을 훔쳤을 거라는 확신이 생겨서 빈볼을 지시했다고 한다. 근데 지시를 받은 안영명이 2구째까지도 빈볼을 못 맞히자 속으로 "어휴 그것도 못 맞히냐 바보같은 새끼 ㅉㅉ" 하면서 대기실로 들어갔는데 잠시후 경기장에서 뭔가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났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안영명은 맞힐때까지 계속 던졌다고 한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조용훈]]이 푼 일화에 따르면, 조용훈과 같은 방을 썼던 [[황두성]], [[정민태]], [[전준호(1969)|전준호]] 등이 모두 조용훈을 포기하자[* 조용훈이 87년생, 06년 고졸인데 황두성은 76년생, 95년 고졸(11살 차이), 정민태는 빠른 70년생, 88년 고졸(18살 차이), 전준호는 빠른 69년생 87년 고졸(19살 차이)로 전부 나이차가 큰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이 들이 계속해서 조용훈을 포기하면서 20살이나 차이나는 현대 왕고 김동수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 김동수와 같은 방을 쓰게 됐다고 한다.[* 실제 나이로도 20살 차이, [[서울화곡초등학교]] 2회(김동수)-22회(조용훈) 선후배 사이.] 김동수가 아침 9시에 기상해서 커튼을 걷고 조식을 먹으니 술 먹고 놀다가 새벽 3-4시에 잠드는 조용훈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2000년대에는 선배가 어쩌다 한번씩 후배에게 놀다 오라고 하는 경우라도 있었다지만 1980~90년대는 얄짤도 없었다. 일례로 사직의 별 [[최동원]]은 배터리를 이룬 후배 [[한문연]]과 같이 숙소를 쓰면서 낮경기를 하는 날마다 9시 안에 무조건 자도록 했다. * 코치 활동을 하면서 옆 사무실을 쓰는 [[두산 베어스]]의 코치나 프런트 등과 친하게 지낸다. 잠실야구장에서 같이 담배를 사거나 커피를 사서 마시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 야구게임 [[9M 프로야구]]에서 라이센스를 못 땄는지 김두성이라는 가명으로 출시했다. * 원조 [[홈런존 저주]]를 가진 타자라 볼 수 있을 듯하다. 1998년 [[현대 아토스]] 홈런존을 4회에 맞추면서 총 100만원을 타게 되었는데, 같은 해를 끝으로 LG에서 팀을 옮기게 되었고, 이후 삼성,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