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명순 (문단 편집) == 개요 == >'''“조선아...''' >'''이다음에 나갓튼 사람이 나드래도''' >'''할수만잇는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이 사나운곳아 사나운곳아”''' >김명순의 시 <유언>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최초로 시집을 낸 여성 [[시인(문학)|시인]], [[평론가]], [[극작가]], [[기자]]에다가 5개 국어를 구사한 [[번역가]]로도 활동하여 다방면으로 이름을 알렸다.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며 1951년에 [[일본]]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는 탄실(彈實). 아버지 김희경(金羲庚)은 평양의 대지주로, 평안남도 참사관(參事官)을 지낸 관료이다. 어머니는 [[기생]] 출신의 [[첩]]으로, 기명(妓名)은 산월(山月)이다. 1912년 [[진명여학교]] 보통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나, 중퇴하고 귀국했다. 191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했고, 이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평생 배우는 것을 멈추질 않았다고 한다. 1917년에 단편 소설 <의심의 소녀>로 문단에 데뷔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했으며, 5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외국어 실력이 뛰어났고, [[독일어]] 노래를 만들어 불렀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었으며, 미모도 빼어나 [[일본]] 유학 시절엔 일본 남성에게 고백을 받기도 했다. 또한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다.[* 현재 동명이인 배우 김명순을 탄실 김명순으로 곡해한 것 아닌가라는 논의가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당시 최고 [[엘리트]]에 [[엄친딸]]의 원조로 볼 수 있는 완벽한 인생 같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