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명순 (문단 편집) == 재평가 == 예전의 문단에서는 김명순에 대하여 '방탕한 여류 문학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1980년대 초부터 이러한 평가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당시 방송 극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구석봉 씨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01200329211022&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0-12&officeId=00032&pageNo=11&printNo=11088&publishType=00020|#]] [[동아일보]](1981. 10. 9) 기사에 따르면 드라마 작가 구석봉(具錫逢) 씨는 김명순의 넷째 동생 김기성(金箕成, [[서울]] 거주, 77)과 셋째 여동생 김영순(金英淳, [[부산]] 거주, 78)을 직접 만나 "[[김동인]]의 <김연실전>의 모델은 김명순이 아니며, 김명순은 [[첩]] 출신 소실의 [[서자|서녀]]가 아니라 [[평양]]의 명문 가정에서 엄연히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났고, 그녀의 아버지 김희경(金羲庚)도 감영의 이속이 아닌 [[평안남도]] 참사였으며, 그녀의 숙부인 [[김희선(1875)|김희선]](金羲善)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상해임시정부]] 시절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 밑에서 차장을 지내는 등 뼈대 있는 집안에서 특히 부모의 귀염을 받고 당당하게 [[유학]]을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30747&cid=41773&categoryId=41775|#]] 구 씨의 주장에 따르면 [[김동인]]이 쓴 <김연실전>의 기록은 김명순의 가족이 말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며, 김명순의 방탕한 생활도 왜곡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대세였던 여론을 뒤집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는지, 그 후에는 다시 잊혔다. 김명순의 친모가 기생 출신 첩이라는 것도 아직까지는 정설로 여겨진다. 이는 김명순이 집필한 자전적인 소설에, 친모가 [[기생]] 출신이라 멸시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 [[http://blog.naver.com/ru70?Redirect=Log&logNo=50037433980|링크]] 이처럼 증언이 엇갈리는 이유는, 김명순이 어린 시절에 이미 생모와 헤어져 적모(嫡母)[* [[서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정실 부인.]의 자녀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http://blog.naver.com/liprap?Redirect=Log&logNo=40003146821|링크]] 이 때문에 이복동생들의 기억에 착오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첩의 자식도 정실부인이 키워 주는 일이 많았으므로, 김명순의 이복동생들이 김명순의 생모가 따로 있었음을 몰랐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집안의 돈을 훔쳐서 [[일본]] [[유학]]을 갔다는 것이나 방탕한 사생활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여성계를 중심으로 김명순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며, 남성 주류의 근대 문학계에서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명순 전집을 엮은 맹문재 시인이 있다.] 한편 같은 이유에서 비슷한 시대에 신여성으로 핍박받았던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경우는 항일 운동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점도 재평가에 한몫을 했다.] 김명순의 삶을 읽기 쉽게 정리한 글이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315128&memberNo=11036773&vType=VERTICAL|#]] 항일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재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http://www.womennews.co.kr/news/90305|#]] >[[페미니스트]] 시인 문정희(한국시인협회 회장)는 "김명순은 1세대 여성 문인으로 양과 질에서 단언코 누구보다 탁월했다"고 상찬했다. 문 시인은 "대화체나 서술까지 집어넣는 새로운 형태의 자유시를 발표해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며 "특히 [[일제강점기|식민지 시대]] 항일 정신이 굉장히 많이 발현된 작품이 많았다. 이는 [[이육사]]나 [[한용운]], [[신채호]]보다 시기가 더 앞선 것이다.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자아 인식과 항일 정신을 보여준 선구적 작가였다"고 말했다. <싸흠>은 이러한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평가받는 시이다. 시에 대한 해석은 여기에 있다. [[http://blog.naver.com/hobero338?Redirect=Log&logNo=70066925963|#]] >늙은 병사가 잇서서/ 오래 싸왔는지라/ >왼몸에 상처를 밧고는 싸흠이시려서/군기를 호미와 괭이로 갈앗섯다 >그러나 밧고랑은 거세고/지주는 사나우니/씨를 뿌리고 김은 매여도/추수는 업섯다 >이에 늙은 병사는/답답한 회포에 졸려서/날마다 날마다 낮잠을 자드니/ >하루는 총을 쏘는듯이 가위를 눌넛다 >아-이상해라 머리를 빗트럿다/자나깨나 싸흠이잇슬진대/ >사나죽으나 똑갓틀것이라고/사람마다 두팔에 힘을 내뽑앗다 [[김동인]]은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가 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남았지만, '''김명순은 비록 가난에 시달렸을지언정 끝내 친일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대조적인 삶이라 하겠다. 이는 신사 참배를 거부한 [[나혜석]]의 경우와도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김명순을 비난한 [[남자]]들은 대부분 [[친일파]]'''이다. [[성폭행]] 가해자인 [[이응준]]은 물론 펜을 휘둘러 2차 가해를 한 [[김동인]], 김기진도 친일파였으며, 김명순을 탕녀라고 비난한 [[전영택]]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14116|교단에서도 친일파 인증]].[* 다만, 전영택은 김명순이 키우는 아들이 사생아가 아니라, 친구의 권유로 입양한 아이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김명순의 말년을 다룬 소설 [[https://jbooks.jikji.org/1955/01/01/%EA%B9%80%ED%83%84%EC%8B%A4%EA%B3%BC-%EA%B7%B8-%EC%95%84%EB%93%A4/|김탄실과 그 아들]]에 명시된 내용이다. 전영택은 김명순의 친구의 남자형제여서 김명순 생전에 가깝게 지냈고, 그래서 김명순의 입양아들과도 알고 지냈던 것이다. 이 소설은 김명순을 둘러싼 악성 루머를 반박했을 뿐만 아니라, 생전의 김명순을 학구열이 강했으나 순탄치 않은 개인사로 비극을 맞은 인물로 묘사하여 나름 온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비록 전영택이 편견은 있었을지언정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친일파가 아닌 남자로는 어린이날로 알려진 [[방정환]]이 유일하나[* [[방정환]]도 친일 의혹이 있긴 하나 어쨌든 손병희의 사위로서 일본 순경의 지속적인 주시대상이었으며 오늘날 독립운동가로 분류되고 있다.], 그 역시 악질적으로 김명순에 대해 루머글을 쓰며 괴롭혔다. 잡지 <별건곤>에 "김명순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도 처녀 행세한다"는 사실과 다른 기사가 실렸는데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90281|이 기사]]를 방정환이 썼다고 한다. 결국 방정환은 김명순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도 기사화되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2704220023920200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7-04-22&officeId=00023&pageNo=2&printNo=2376&publishType=00020|#뉴스라이브러리]] 결국, 법원에서는 김명순의 주장을 받아들여 방정환이 쓴 글의 연재는 중단되었다. 방정환의 이러한 논란은 그동안 남성 중심적 사회 인식 때문에 제대로 조명 받지도 않다가 21세기가 되어서야 김명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알려지게 되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713847#home|2016년 중앙일보]] [[https://youtu.be/aegZZy6WhAk|2018년 JTBC]] [[https://news.khan.kr/AvaW|2022년 경향신문]] 2022년 [[EBS]] <다큐프라임>에서도 김명순에 대한 한국 남성 문인들의 폭력을 다루었다. [youtube(BtKwvphdWRg)] 방정환과 관련된 내용은 해당 영상 25분 부터 등장한다. 영상에 따르면 방정환의 허위 악성 기사는 김명순이 한국 문단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미실>로 유명한 소설가 [[김별아]]는 김명순의 생애를 담은 소설 <탄실>을 발표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531150|#]] 김별아는 "내가 문단에 데뷔했을 당시 분위기가, 김명순이 활동했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여성차별적인 현실은 요즘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사학자인 [[이병도]]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이병도와 김명순은 잡지 '폐허'의 동인 활동을 한 적이 있고, 이병도의 아내인 조남숙은 김명순과 진명여고 동기였다. 그래서 한동안 김명순은 이병도의 집에 머물며 책을 교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병도 본인도 훗날 김명순과의 인연에 대해 회고하기도 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한국의 시인]][[분류:1896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평양시 출신 인물]][[분류:전주 김씨]][[분류:진명여자고등학교 출신]][[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