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병현 (문단 편집) === 김병현의 보직 논란 ===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직의 특성상 한두 시즌 반짝한 뒤 사라지는 마무리 투수가 많아서 사실상 [[정수근|야만없]]급의 의미없는 가정이다. 솔직히 말해, 계속 마무리로 남았다 한들 꼭 대성하리란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MLB 역사에서 김병현 수준의 커리어를 남긴 투수는 무지하게 많다.(...) 다만, MLB는 100년이 훌쩍 넘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김병현의 부진이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5년 콜로라도 입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조정방어율 100을 넘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발목을 맞은 2003년 시즌에는 훌륭한 성적을 냈으나 이후 부진이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부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김병현은 보직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서 감독이나 코치 등과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리조나를 떠나 타격이 강한 AL동부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5년에는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결국 정리해 보자면 김병현은 혹사와 부상 이후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에 각 구단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트레이드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하면서 부상관리는 커녕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팀들을 떠돌게 되었고 그에 따른 누적된 대미지로 커리어가 일찍 꺾인 선수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에 너무 구른 나머지 커리어에 타격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풀타임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 00년부터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02년까지 김병현이 던진 이닝은 포스트시즌 포함해서 각각 70.2 - 107.2 - 85이닝인데 이건 불펜 투수로써는 엄청나게 많이 이닝을 소화한 거다.[* 최근 분업화로 인해 200이닝 투수가 없어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김병현은 거의 팀 1~2선발 급 투수들의 절반 이닝을 선발도 아니고 불펜으로 던졌다는 거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때의 혹사가 선수생활 전체를 갉아 먹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언더핸드 투수들은 특유의 투구폼 때문에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심하고, 김병현이 했던 투구폼 또한 상당히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몸에 무리를 주는 폼이다. 거기다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라 불펜에서 거의 선발투수급으로 공을 던지고 나서야 경기에 등판했다는 증언과 더불어 언제든지 출동준비를 해야하는 소방수 혹은 마무리 투수로 커리어 초반을 보냈다고 생각해보면 실제 경기에서 던진 것보다도 대미지가 컸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병현의 바람처럼 선발로 완전 전향했다면 전성기가 좀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발은 5인 로테이션제 때문에 그나마 계투보다는 관리를 받는 편이고, 준비시간도 길어지는 등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도 좋기 때문이다. 상술된 2003년 시즌만 봐도 7월부로 마무리 전향해서 정규시즌 끝나는 9월 29일(거의 10월)까지 거의 3달 동안 42경기를 찍었는데 이건 관리 부실을 넘어 엄청난 혹사다.[* 단순계산해서 3달을 90일이라 쳐도 하루걸러 하루등판했다는 소리다.] 03시즌 보스턴에서의 막판 마무리 전향(+혹사)이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전향 없이 2003년을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면 좀 더 관리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만큼 전성기도 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또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에게 충분한 시간도 없이 3개월 만에 마이너리그를 패스시키며 무리하게 굴린 것도[* 위의 이닝을 보면 알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고졸 신인에게 첫해부터 3년간 불펜으로 250이닝 이상 던지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커리어에 타격을 줬을 것이다. 마이너리그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야구 기술만 아니라 20살의 어린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많은 이닝을 던져서 버두치 리스트에 걸리지 않도록 루키부터 AA까지 단계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이닝수를 늘려가며 프로선수의 몸을 만들어주고, 프로선수로서 1년간 풀 시즌을 치르며 몸 만드는 법, 부상 관리법, 혹독한 마이너의 환경에서 멘탈 단련 등 오래 살아남는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마이너에서 야구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김병현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면 공은 뛰어났지만 이런 부분들이 부족해서 결국 재능에 비해 롱런하지 못했기 때문. 김병현이 등판전 공을 많이 던지지 않으면 몸이 안 풀렸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바로 이런 거 고치는 법을 마이너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서비스타임 조절한다고 콜업시기 장난치는 지금과는 달리 [[대런 드라이포트]], 아리엘 프리에토라는 최고의 유망주를 2년 연속 마이너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 무대에 데뷔시키는 등 리그 전반적으로 마이너 기간을 줄이고 재능있는 놈은 팍팍 올려 쓰는 분위기였으며 박찬호 역시 1994년 메이저 리그를 곧바로 경험할 수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재능있다고 급작스럽게 올린 선수들이 상술한 경험부족, 자기관리 미비 등으로 많이 망가져나갔고 이후로는 리그 전체적으로 김병현처럼 실력이 좋다고 급작스런 월반보다는 마이너를 착실히 밟게 하는 육성방침을 취하고 있다. 결국 너무 엄청난 천재성 때문에 급속도로 콜업된 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아이러니한 케이스. 참고로 김병현이 계약금으로 받은 225만달러는 90년대는 당연하고, 2020년대에 와서도 30억원에 달하는 웬만한 1라운더 유망주들이나 받는 거금이다. 후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언급이 되기를 자신이 그 이후에 부진한 이유는 보직보다는 부상관리에 대한 소홀이 크다고 말했다. 배트에 맞은 뒤에 일찍 나가고 싶어 급하게 회복된게 크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