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갑 (문단 편집) === 프로 경력 === 프로에 입단한 후 아마 야구 시절의 파워는 사라졌고, 타율도 항상 규정 타석을 채운 야수 중에서 최하위 권을 맴돌아 "[[멘도사 라인|한국의 멘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비슷한 케이스로 [[태평양 돌핀스]]에서 같이 활약했던 [[염경엽]]이 있다.] 통산 타율은 0.235이고 한 때 2할 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신 수준급의 내야 수비를 자랑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빙그레이글스 김성갑 선수.jpg|width=100%]]}}} || || [[파일:빙그레 이글스 엠블럼.svg|width=25]] [[빙그레 이글스]] 선수 시절 || 1985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던 1986년 1월 20일, 투수 [[성낙수]]와 함께 전력보강 선수 지원 차원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그래서 전성기는 [[빙그레 이글스]] 시절.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에 기회를 주는 역할을 많이 했으며,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 된 후에는 노련한 2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1987년 10월 3일부터 1988년 7월 20일까지 67경기 연속 3루수 무실책 기록을, 1988년 3루수 시즌 최소 실책(3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태평양돌핀스 시절 김성갑.jpg|width=100%]]}}} || ||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94~1995).png|width=25]]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오른쪽에 김성갑을 맞이해 주는 선수는 [[김용국(야구)|김용국]]. 공교롭게도 둘 다 [[현대 유니콘스]] 출범 직전인 1995년 말 나란히 은퇴했다.] ||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태평양에서는 주로 2번 타자로 출장했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타자였다. 마지막 4차전에서 LG 마무리 투수 김용수에게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나는 모습으로 LG의 우승을 확정짓는 제물이 된 것. 1995 시즌 종료 후, 태평양을 인수해 새로 출범한 [[현대 유니콘스]]가 세대교체 차원에서 그에게 은퇴 및 코치직을 제시하였고, 이에 응하며 은퇴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