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삼 (문단 편집) === 한자 선호파 === >'''한글로만 된 신문은 읽지도 않아요.'''[* 당시 한글로만 기사를 싣던 신문으로는 한겨레신문 등이 있었다. 다만 한겨레신문 창간 초기에는 김영삼이 대표적인 야당 정치인이던 시절이었고, 상당수 언론의 친정부적인 색채가 빠졌다고는 하지만 뒷돈을 받는 등 이런저런 거래를 했던 것은 여전해서 진보언론이 생기는 것이 김영삼 입장에서 나쁘지는 않았기에 직접 한겨레 신문의 주식을 사는 등 후원을 했다. 다만 오래가지 않아 3당 합당으로 틀어졌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문민정부 때 신문의 순한글화가 진행되었다. 이유인 즉슨, 신문 인쇄의 전산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세로쓰기-국한문혼용체를 유지하기보다는 가로쓰기-한글전용으로 신문인쇄하는 것이 비용절감에 유용한데다가 편집이 간편해지기도 하고, 정부 시책으로 한글전용을 밀어붙이면서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진입을 할 무렵이 되어 수요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 [[월간조선]] 2001년 2월호 내용 중 [[조갑제]] 편집장과의 상도동 사저 인터뷰에서[* 재미있는건 [[조갑제]]는 김영삼 생전에는 '[[좌파]]의 [[숙주]]'라면서 그를 비난한 인물이란 점이다.[[http://www.bluekoreadot.com/news/articleView.html?idxno=36|#]] 그러나 YS 사망 후 조문할 때에는 김영삼이 독재와 싸운 챔피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http://www.focus.kr/media_view.php?key=2015112403135438488|#]]] 사적으로 [[한자]] 선호자로 알려져 있어서 친필 사인에도 [[한글]] 대신 한자로 사인을 하는 편이었다.[* 이는 정적이기도 했던 [[박정희]]가 한자 사인을 쓰다가 한글 사인으로 바꾼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하도 많이 뿌려대서 '영삼시계'란 별명을 갖고 있는 청와대 기념품 시계에도 김영삼은 한자로 사인했고 이 사인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상기했듯 신문을 읽을 때도 한글로 된 신문은 보지도 읽지도 않는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또한 퇴임 후에도 한자교육은 국민들의 인식능력이 향상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면서, 한자 선호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였고, 한자교육 강연회에도 곧잘 참석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다. 다만 같이 3김으로 묶여있던 [[김대중]]과 [[김종필]]도 평소에 국한문혼용체로 글을 썼던 것을 보면 사상이나 신념의 문제라기보다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국한문혼용체를 쓰던 것이 당연시되었던 시대에 정치활동을 한데다가, 사회전반적으로도 한문학 지식을 가진 인재를 높게 평가하던 시절에 교육받고 활동했던지라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세대차인 것. 막말로 지금 세대 중에서도 한자교육을 실컷 받았는데 사회에서 점차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면 공부한게 억울해서라도(...) 한자 병용하자고 주장할 법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