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도부 (문단 편집) == 53년 10월 1일 생존자 명단 == 다른 빨치산 문학에서 계속 나오는 말인데, 당시 빨치산들은 각 군당에서 올라오는 자료들을 취합해서 어마어마한 문서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땅속에 묻는 비장을 하였다고 나온다. 남도부 부대 역시 비장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2001년 10월 21일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성대경)에 의해 경남 창녕의 차진철(북한 김정일의 처남 성일기의 가명)의 큰아버지 성기수의 집터 에서 발굴 되었다. 53년말 남도부와 차진철이 도심 침투를 위해 성기수의 집에 머물렀을 때 묻어 둔 것이였다. 발견된 물건은 유인물 기관지 '붉은별' 3부로 53년 2월 8일자, 6월 25일자, 8월 15일자였다. 그외 남도부의 친필 노트, 놋숟가락, 공작원 증명서, 원호증(~~약탈한~~ 양곡 접수 확인증), 격문이 있었다. 남도부의 친필 노트에는 제3지대 생존자 26명과 일월산 지구당 10명의 명단이 첨부 되어 있었다. >1. 지구당(일월산) 성원(10명)[* 제4지구당을 뜻한다. 산하에 경북도당과 남도부 부대를 두었다. 그러나 경북도당은 사실상 전멸된 상태라 북한에서 경북도당 재건을 위해 이구형을 파견한 것이다. 하지만 남도부는 몰랐으나 이글을 작성하는 10월 1일 기준으로는 이구형과 일월산의 지구당 사령부는 전멸한 상태였다.] >조직위원 부위원장 이구형 >부위원장 대리 유격 지도부장 남도부(중복) >대구 시당 위원장 손대수 >선전조직부 출판 기술과장 장혁 > 공작원 허경숙, 김영수, 백운봉 >유격지도부 지도원 차진철(중복) >북부지도부 지도원 박호석, 남정숙 > 공작원 수명(성명 미상) >2. 제3지대 성원(26명) >(사령부) 4+2명 >지대장 남도부 >부지대장 유응제(파견) >참모장 김진구(파견) >참모 차진철 >간호원 지춘란 >성원 김문식 >부산동래지구 11명 >부대장 김진구(참모장 겸임) >정치위원 박종남 >지도원 윤창하 >조장 정길화 >조원 길토목, 오경수, 설암, 성도, 리정복, 박종부, 김상선, >울산밀양지구 6명 >조장 허철 >조원 림장하, 림병욱, 차일조, 은동이, 김강숙 >대구지구(청도지구) 5명 >책임자 유응재(부지대장 겸임) >성원 홍만식(사령부), 정대홍, 심경부, 지춘란(중복), 손미라 >북부지구(청도에서 도당으로 파견) 2명 >서규칠, 권춘식 이후 청도지구는 전멸된 후 유응재가 사령부로 돌아왔고, 울산과 동래지구는 언제 전멸한지 모른다. 사령부에서 김문식은 백기들고 투항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머지 사령부 인원은 비슷한 시기에 전부 특무대에 의해 체포된다. 이 명단이 발굴 됨으로 93년에 출판된 실록 <남도부>가 적지 아니한 부분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앞의 책과 달리 남도부 부대는 제5지대를 자칭한 적이 없고 계속 제3지대인 상태였으며, 또한 다양한 소부대로 분산 투쟁(9개 소지구당으로 재편)한 적이 없고 동래/밀양/청도 3개 부대만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4지구당과 이구형, 남도부의 관계도 나오는데, 실록 <남도부>와는 달리 남도부는 제4지구당 위원장이 아니라 부위원장 대리이자 유격지도부장이였다. 다른 빨치산 문학에는 이구형이 공석인 제4지구당 위원장에 취임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 역시 아님이 증명되는 문서이다. 여타 빨치산 문학에서 엄청난 문서를 땅속에 비장했다고 나오는데 이 문서들이 발견된다면 빨치산의 실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해당 문학에서도 "비장할 때 비닐을 구할 수 없어 그냥 땅에 묻어 두었는데 과연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온다. 다만 생존자 명단은 <신불산>의 기록과는 꽤 차이가 난다. 위의 명단에는 없지만 제3소지구당 조직부장 구연철등 7명이 남아 있었고, 남도부가 체포된지 3개월후인 54년 4월 부산시당을 재건하기 위해 잠입했다가 4~5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부산시당 재건사건'이었는데 백설암 등 2명은 사형, 구연철과 장두천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미군이 철수하면 통일이 되어 석방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런거 없다]]. 다만 구연철은 후일 석방되어 속칭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섬]]에 대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