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악신도시 (문단 편집) == 역사 == [[2005년]] 11월 11일 [[전라남도청]]이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서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일대로 이전하되면서 조성된 신도시로 당시 목포시 옥암동의 미개발지구였던 옥암지구 개발 계획이 이미 존재했었는데 당시 전라남도청이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에서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로 이전하기 되면서 옥암지구를 편입하고 계획을 확장한 [[신도시]]이다. 목포시의 도시계획이 기존의 구도심(원도심)에서 1990년대의 하당신도시, 그리고 현재의 남악신도시로 점점 시가지의 동쪽으로 확장되고 있는 특징과도 유서 깊은 관련성이 있다. 본래 전남도청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주요 공공기관들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었다. 본래 광주시가 전라남도 관할 일반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6년 전라남도 광주시가 광주직할시[* 직할시 승격 후 1988년 전라남도 송정시(구 광산군 송정읍), 광산군이 광주직할시로 통합되었다.](1995년 [[광주광역시]]로 개칭)로 승격되면서 전라남도와는 별개의 광역자치단체로 독립되었고, 이로 인하여 전라남도청 소재지가 전라남도 관내에 포함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전라남도청 및 전라남도 산하 행정기관을 다시 전라남도 도내로 이전하고, 동시에 목포 주변에 신도시를 조성하는 차원에서 무안으로 전남도 산하 공공기관들을 목포 근교의 무안군 삼향면 일원으로 이전이 성사된 상태. 남악신도시가 조성된 [[2005년]]부터 전라남도청 및 전라남도의회, 전라남도교육청, 전남지방경찰청 등 전라남도 휘하 관공서들이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무안군의 남악신도시로 이전하게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 전남 서남권에 위치한 신안군이라 도청 이전 후보지 선정 당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전남도청 이전은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5월 18일 당시 대통령 특별담화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5·18기념공원]] 조성을 약속하면서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도청 이전 대상지 선정 역시 1993년 12월 21일이었는데, 전남도청 이전결정 당시 김대중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 체류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도청 이전 후보지 선정 자체에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었다. 전라남도청 이전 관련 유치 당시 목포를 위시한 서부권과 순천, 여수, 광양을 위시한 동부권의 경쟁 및 갈등이 매우 치열했다. 이후에 지역 정치인들간의 의견 수렴으로 여수에 [[2010 상하이 엑스포|2010 엑스포]]를 유치할 수 있도록 전남도가 전면적인 지원 및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로 하면서, 도청은 최종적으로 서남권 일대(목포시 및 무안군 삼향면)에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동남권에 소재한 여수는 등록박람회인 2010년 엑스포 유치에 일차적으로 실패하였고 인정박람회인 [[2012 여수 엑스포]]를 유치하였고 2012년 5월 12일부터 동년 8월 12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전라남도 남악신도시를 시점으로 도청이전신도시를 2개의 시군 경계에 걸쳐 조성하는 특색이 생성되었는데 [[전라남도청]]이 이전한 남악신도시 이후로도 2013년 [[충청남도청]]이 이전한 [[내포신도시]]도 [[홍성군]]-[[예산군]]에 걸쳐 조성되어 있으며 2016년 [[경상북도청]]이 이전한 [[경상북도청신도시]] 역시 [[안동시]]-[[예천군]]에 걸쳐 조성되었다. 실제로 내포신도시 계획 단계에서 남악신도시의 일부 사례를 인용하여 벤치마킹하였다는 전례가 있다. 다만 남악신도시 및 경북도청신도시의 경우 도청과 도의회를 무안, 안동이 사실상 독점한 반면 내포신도시의 경우 충청남도청은 홍성, 충청남도의회는 예산에 할당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남악신도시 및 경북도청신도시와 별개로 미미한 차이도 존재하는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