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달랏 (문단 편집) == 역사 == [[17세기]]에는 원래 [[참족]]등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지만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화 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휴양도시를 건립하자는 계획이 착수되었고 이곳은 약 15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날씨가 덥고 습한 베트남에선 최고의 피서지이다. 그 결과 프랑스 식민정부가 관광도시로 만들기위해 더욱 예산을 투자하면서 1916년 프랑스 식민정부의 후에법원에서 달랏 시 수립을 선포하며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50년대 초 잠시 존재했던 [[바오다이]] 황제의 왕실령 [[베트남국#s-3|황조강토]]의 수도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있어 이곳을 뺏기는 순간 [[남베트남]]수도인 [[호치민 시|사이공]]과 미군과 한국군 등 연합군 기지가 몰려있는 동부해안지대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남베트남군은 이곳을 철저히 방어해냈다. 때문에 [[테트 공세|구정공세]] 당시에도 공산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도시를 지켜냈으며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는 와중에도 공산군이 이곳으로 진주한적이 없다. 이곳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도시분위기는 구정공세가 있었던 1968년을 제외한 전쟁 종전 직전까지 평화로웠으며 사이공 함락소식이 들려오자 그제서야 남베트남이 망한줄 알았다고 한다.[* 다만 패망 직전 미군 특수부대가 달랏에 와서 이곳에 있는 원자력 연구소(DNRI)의 연구용 [[원자로]]에 있는 [[우라늄]] 연료봉을 가져간 적은 있다. 달랏 원자력 연구소는 지금도 남아있다.] 원래 해안도시인 판랑탑짬[* 참파의 후반기 수도였다. 참파말로 판두랑가.] 과 달랏을 연결해주는 산악철도가 존재했지만 1968년 [[베트남전쟁]]으로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 구간만 복원되어 운행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