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항성 (문단 편집) === 통일 신라 이후 === 삼국 통일 후 [[경덕왕]] 때 당은군(唐恩郡)으로 바꿨다가 829년(흥덕왕 4년)에 당성진(唐城鎭)을 설치하여 해안 방어를 위해 군사 기지화 하였다. 이후 [[후삼국시대]]가 개막하고 900년(효공왕 4년)에 [[궁예]] 휘하의 장수 [[왕건]]에 의해 정복되어 [[태봉]]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고, 태봉의 영역을 그대로 계승한 고려에 이르러서도 별다른 분쟁 없이 쭉 고려의 영역으로 남게 된다. [[고려]] 초에 당성군으로 개칭하였고, 그 뒤 수주(水州 : 지금의 [[경기도]] [[수원시]]), 인주(仁州 : 지금의 [[인천광역시]])에 속하였다가 1290년([[충렬왕]] 16) 익주지사(益州知事)의 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다.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를 거쳐 1308년 익주목(益州牧), 1310년([[충선왕]] 2년) 남양부가 되었다가 1413년([[조선]] [[이방원|태종]] 13년) 남양도호부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양군으로 인천부 밑으로 예속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4년에 수원군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수원군이 화성군으로 개칭되고 2001년 [[화성시]]가 되었으며, 당성은 현재 남양읍 일대의 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