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성팔족 (문단 편집) === 해씨(解氏) === >우보 을음(乙音)이 사망하자 북부의 해루를 우보로 임명하였다. 해루는 본래 [[부여]]인인데 그 도량이 넓고 식견이 깊었으며 70세가 넘어서도 체력이 강하여 등용된 것이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41년(서기 [[23년]]) 1월 백제 역사에서 해씨 중 가장 먼저 등장한 사람은 해루(解婁)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부(北部) 출신이며 시조 [[온조왕]] 대에 우보(右輔)의 벼슬을 지냈다. 친족 세력인 족부(族父) 을음이 죽자 해루를 후임으로 내세워 재상 격의 관직인 우보를 맡긴 것은 해씨가 강성했음과 더불어 백제 건국의 주역인 [[온조왕]]과 깊은 연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할 점은 해루가 '[[부여]]인'이라는 것인데, 해씨는 부여의 왕가였으며 일흔이 넘었다는 것을 통해 백제 건국 세력 중에서도 오래된 세력이었음을 증명한다. 다만 초기 한성백제 지배층은 적어도 고고학적으로 보기엔 부여와는 무관하고 고구려하고만 관계가 있기에, 당연히 여기서 이 부여는 기원전 2세기 송양 집단, 기원전 1세기 주몽 집단이 갈라져나온 그 부여가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송양 집단이 요동 동부 고조선 잔민들과 연합해서 세운 [[졸본부여]]가 될수밖에는 없다. [[한성백제]] 시절부터 진씨와 더불어 '''대성팔족 중에서 가장 먼저 세력을 떨친 백제의 대귀족 가문'''이었으며, 17대 [[아신왕]]이 16대 [[진사왕]]으로부터 왕위를 되찾을 때 최초로 중앙 정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아신왕이 갑작스럽게 죽은 후, 왕제(王弟)들 간에 왕위 쟁탈전이 일어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왜국]]에 있던 [[전지왕]]을 즉위시켜 왕비족(王妃族)으로서 권세를 떨쳤다. 웅진백제 시절 그 권세는 더더욱 커져 477년에는 병관좌평 해구(解仇)가 22대 [[문주왕]]을 시해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왕실이 진씨와 결탁하여 이를 진압하면서 그 세가 꺾였다. 그러나 24대 [[동성왕]] 대에는 [[장군]] 해예곤이 북위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기록이 있으며, 25대 [[무령왕]] 대에는 한솔 해명이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는 등 여전히 중앙에서 활동했다. 이후 30대 [[무왕(백제)|무왕]] 때 좌평 해수(解讎)가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했다가 참패한 이후로 해씨는 더이상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를 두고 무왕이 패전의 책임을 물으며 해씨 세력을 중앙 정계에서 축출함으로써 왕권을 넘보던 귀족 세력에게 본보기를 보였다는 추측이 있다. * [[해루]](解婁): [[온조왕]] 대의 인물이다. 23년 1월 나이가 70이 넘었음에도 지식이 많고 기력을 잃지 않았다는 이유로 을음의 뒤를 이어 우보에 임명되었고, 90세로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해씨(解氏) 출신으로 기록상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며 본래 부여인이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 [[해구(백제)#s-1|해구]](解仇): 11대 [[비류왕]] 대의 인물이다. 312년 4월 병관좌평에 임명되었다. * [[해충(백제)|해충]](解忠): 한성 사람으로, 405년 9월 왜국에 있던 [[전지왕]]이 아버지 [[아신왕]]의 부고를 듣고 귀국할 때 한성에 들어가는 것을 잠시 지연시켜 피살을 막았다. 그 공로로 406년 9월 달솔이 되고 한성의 벼 1,000섬을 받았다. * [[해수#s-3.1]](解須), [[해구(백제)#s-2|해구]](解丘): 18대 [[전지왕]]의 외척으로서 407년 2월 각각 내법좌평, 병관좌평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특히 해수는 20대 [[비유왕]] 때인 429년 10월 죽은 [[부여신]]의 뒤를 이어 상좌평이 되었다. * [[해구(백제)#s-3|해구]](解仇): 22대 [[문주왕]]~23대 [[삼근왕]] 대의 인물이다. 476년 8월 병관좌평으로 임명되었으나 477년[* 《삼국사기》 〈백제본기〉 본문은 이 해를 문주왕 4년으로 기록하고 있어, 서기 478년에 대응한다. 그러나 연표에서 문주왕의 재위 기간은 3년까지라고 하고 있으므로, 본기에서 3년을 4년으로 잘못 적었다고 봄이 정설이다.] 9월 도적들을 시켜 문주왕을 시해했다. 이듬해인 478년 봄 은솔 연신(燕信)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덕솔 진로에게 사살되었다. * [[해예곤]](解禮昆): 24대 [[동성왕]] 대의 인물이다. 목간나(木干那),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贊首流)와 함께 490년 북위군에 맞서 크게 이겨 495년 무위장군(武威將軍) 불중후(弗中侯)에 제수되었다. * [[해명#s-3|해명]](解明): 25대 [[무령왕]] 대의 인물이다. 관등은 한솔로, 502년 1월 백가의 난을 진압했다. * [[해수#s-3.2|해수]](解讎): 30대 [[무왕(백제)|무왕]] 대의 인물이다. 602년 8월 보병과 기병 40,000명을 이끌고 신라의 4개 성을 공격했는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아막성 전투]]에서 끝내 참패하여 단신으로 복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