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덕양구 (문단 편집) === 舊 고양군 신도읍 지역 - 乙 === 이들 지역은 전화 [[지역번호]]로 [[경기도]]의 031이 아닌 [[서울특별시]]의 02를 사용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990년대까지는 서울시 도시계획관리구역 및 장기적인 편입예정지에 해당되던 곳이다. '신도(神道)'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부군면 통폐합]] 때 '신혈면(神穴面)'[* 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덕양구 오금동,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이다. 면의 이름은 [[고려]] 시대 [[북한산]]에 있던 절 이름인 신혈사(神穴寺, [[현종(고려)|현종]]이 왕자 시절 머물렀던 곳이다)에서 유래했다. 여담으로 이 절은 진관동 서울 편입으로 인해 더이상 고양시 관내에 존재하지 않는다.]과 '하도면(下道面)'[* 현 삼송동, 동산동, 용두동, 화전동, 덕은동, 현천동, 향동동 일대.]을 통합하면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이 때 경성부 은평면 관할이었던 효자동, 북한동 일대도 신도면에 함께 편입되었다.] 당시 면사무소는 [[진관동|구파발리]]에 두었다가, 1973년 읍 승격과 동시에 구파발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면서 [[삼송동|삼송리]]로 옮겨갔다. 삼송동을 중심으로 한 옛 신도읍 지역은 고양군 시절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도시화된 곳이다. 이에 따라 고양군의 면들 중 처음으로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여담으로 양주군 구리면(현재의 '''[[구리시]]''')도 이 때 함께 읍으로 승격되었다.] 같은 해에 진관외리, 진관내리, 구파발리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리에서 동으로 바뀌었다.[* 이후 2007년 [[은평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진관외동, 진관내동, 구파발동이 진관동으로 통합되었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은 1963년 1월 1일 서울 대확장때 서울시에 편입되지 않은 서울시 도시계획구역 중에 유일하게 서울시에 행정편입된 동네이다.] 서울시 개발계획에 속할 정도로 개발 가능성이 높았다고 점쳐졌던 지역이었지만 1970년 [[그린벨트]]로 묶이고 만다. 고양군 신도면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인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적인 이유로 이 지역을 그린벨트로 지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 진관동이 원래 신도읍 소속이였으므로 은평뉴타운 개발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완전히 개발이 안된 건 아니다. 다만 그 지역이 이미 서울로 넘어간 뒤였기에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80년대 중후반까지는 인구수가 '''5~6만'''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어서[* 인구가 1970년 기준으로 60,026명이었다. 참고로 당시 의정부시 인구가 9만 명이었다. 지금 9만이면 작은 도시겠지만 당시 의정부시는 경기도에 세 곳밖에 없는 시(市) 중 하나였다. 이후 신도읍의 인구는 현재의 진관동 지역이 분리되면서 1975년 58,861명으로 떨어졌다가 1985년 화전읍이 분리되면서 31,595명까지 떨어진다. 물론 삼송/원흥지구 개발 이전 2000년대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1979년에 신도읍의 '''신도市'''승격까지 검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무부의 최종 검토 과정에서 탈락되었으며, 대신 화전읍을 분리시키면서 아예 시 승격은 물거품이 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0424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04-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7705&publishType=00020|#]] 아마 그린벨트 지역인데다가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어 있고 장기적인 서울시 편입예정지였다는 점이 문제였던 듯 하다. 결정적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삼송, 지축 일대 시가지의 노후화와 대대적인 인구 유출로 인해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로 전락했다. 삼송지구 개발 및 입주 전까지, 옛 신도읍 지역의 인구는 (신도읍에서 분리된 옛 화전읍 지역의 인구를 합해도) 2만 명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 때 이곳이 인구 5만 명을 훌쩍 넘겨 '''시 승격까지 거론되었던 동네'''였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지경. 다만 삼송·원흥·지축지구의 개발 및 입주가 시작되면서 다시 예전과 같이 번성하고 활력이 넘치는 동네로 탈바꿈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