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빠 (문단 편집) ====== 독일군의 전투력에 대한 과대평가 ====== 이들은 독일군이 마치 천하무적의 군대였고, 연합국의 물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졌다고 착각한다. 특히 이들은 독소전에서 독일은 철저하게 소련군의 물량에 밀려서 결국 졌다고 말하면서, 소련군 전사자는 2,700만명이나 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특히 [[데이비드 글랜츠]]가 발굴한 "르제프 전투"를 강조하면서 소련군은 사실 독소전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독일군이 서방 연합군을 막으러 서쪽으로 이동한 공백을 차지해 동유럽을 차지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결론내는 경우가 많다. 정작 데이비드 글랜츠는 "노르망디나 렌드리스가 없었어도 소련군이 독소전쟁에서 승리했을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글랜츠의 평가와 별개로 서방의 지원없이 소련 자력으로 방어전은 물론 독일 본토에 대한 반격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수 있을지는 학계에서도 첨예하게 이견이 갈리는 주제이기에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무리하게 영국, 소련, 미국을 한번에 적으로 돌린건 다름아닌 독일이었다.] 소련군 전사자는 최소 700만에서 최대 1,100만 정도로 추산되며, 동부전선에서의 소련인들의 사상자가 1,6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더욱이 소련군 전사자가 700만이라지만, 순수하게 전투, 그러니깐 서로 제대로 싸워서 생긴 전사자의 교환비는 1:1.3 가량으로 추산되는 편.[* 자료에 따라서는 1:1.5정도까지 나오기도 한다. 순수 사망자와 전투에 의한 사망자의 숫자가 다른 이유는 소련군 포로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인데 총 사망자의 33% 이상이 그렇게 발생한 사망자이다. 양쪽의 포로 사망률이 너무 차이가 났기에(소련군 포로의 사망률은 독일군 포로 사망률의 2~4배에 달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면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독소전 초기인 1941년에만 해도 독일은 소련군 포로를 335만 명 가량 잡았는데 이는 초기 소련군 병력에서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병력들이었으나 기습과 스탈린 서기장과 당의 혼선으로 싹 날려먹은 것이다. 이런 피해는 병력 손실에만 그친게 아니었기에 소련은 전쟁 초반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러면 전쟁 말기에는 독일이 이러한 전과를 보여주었을까? 물론 전술적 차원에서 독일군이 선전한 건 사실이고, 소련군에게 지속적으로 타격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전략적으로는 분명히 제대로 잡아내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는 전략적 거점들을 소련에게 내주고 그 결과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여 결국 전선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차 및 자주포를 예로 들면 대전 후기로 갈수록 소련군과 독일군의 교환비는 1:1로 수렴해가며, 이는 독빠들이 무적이라고 찬양하는 [[티거 전차|티거]]와 [[판터 전차|판터]]가 나섰을 때의 교환비로서, 독일군의 주력이 [[3호 전차]]나 [[4호 전차]]였을 때보다도(약 1:5) 오히려 교환비가 나빠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독빠들이 소련군의 [[T-34-76|T-34]] 및 [[IS-2]]를 판터나 티거에는 상대도 안 되는 [[야라레메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애초에 기본적으로 전술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무기 간의 성능을 쉽게 비교하는건 말이 안된다. 유튜브 댓글 같은 곳을 보면, 승패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독일군 우세에서 영미 연합군/소련 우세로 넘어가는 전쟁의 전환점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승패는 동부전선에서 결정났고, 서부전선에서 밀고 온 서방 연합군은 오합지졸들의 독일군을 격파해 온 것이며, 서방 연합군은 이런 오합지졸들에게조차 고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된 소스는 [[오토 카리우스]]가 소련군을 높이 평가한 반면, 서방 연합군은 소련군보다 한참 아래로 평가했다는 단 한 명의 주장을 맹신하는데, 서방 연합군도 만만치 않은 독일군과 싸웠다. [[엘레판트|코끼리]]와 [[나스호른|코뿔소]]가 득시글대던 [[이탈리아 전선]]은 물론이며 [[노르망디 상륙작전|노르망디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마켓 가든 작전|삽질이긴 했지만 네덜란드에서 영국군이 어그로를 끄는 사이]] [[아르덴 대공세|아르덴에서 미군이 독일군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M26 퍼싱|쾰른에 신형 중전차까지 배치하며]] 선전한게 서방측이며, 서부전선에서도 동부전선에 배치되었던 [[판터 전차]]나 [[티거 전차]], [[티거 2]], [[야크트판터]], [[나스호른]], [[엘레판트]]는 물론 동부전선에는 배치된 적도 없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동부전선엔 [[8호 전차|비만쥐]]가 배치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 [[야크트티거]]같이 상당히 강한 무기들이 배치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말을 한 카리우스는 [[야크트티거]]를 타고 미군을 잠깐 상대하다 종전되어 항복한 게 전부다. 그리고 [[크릭스마리네]]와 [[루프트바페]]의[* 안타깝게도 소련 공군은 종전 직전까지도 [[루프트바페]]의 격추 셔틀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소련이 격추시킨 독일기는 높게 잡아도 20%를 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등뼈를 꺾은건 말할것도 없이 영국 해군/공군과 [[공군!|미국 육군 항공대]]이다. 독일군의 패전은 "히틀러의 실책",[* 웃긴건 이렇게 패전의 원인을 특정한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이들이 믿는 또 다른 미신인 독일 국방군이 철저히 합리적인 조직이었다는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국의 스탈린이나 처칠도 뻘짓은 제법 많이 했는데 정작 독일의 승리를 저들의 뻘짓 탓으로는 절대로 돌리지 않는다.] "[[동장군|날씨와 같은 행운]](특히 [[독소전쟁]])[* 날씨는 행운이라고 볼 여지가 있으나 그런 날씨에 고통받는건 양쪽이 동일하다. 날씨 때문에 졌다는 것은 결국 그 날씨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소련군도 동장군 때문에 [[겨울 전쟁]]에서 고전했다.]에 힘입은 석패이고, 독일군의 승전은 "연합군이 범접할 수 없는 독일군의 압도적인 작전능력 및 우수한 지휘관 탓"이라는 왜곡도 있다. [[정치장교]]의 삽질, [[형벌부대]] 운용 같은 면에서 냉전 시절이나 독일군이 퍼트린 도시전설이 아직까지도 독빠들에게 진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나무위키의 어느 항목을 보면 소련군 [[정치장교]]들은 작전에 앞서 중무장을 한 독전대를 거느리고 돌격에서 낙오하거나 후퇴하는 병사들을 사살했다는 주장을 써놓고 있는데, 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초기처럼 소련군에 패배주의가 흑사병처럼 번질 때의 특정한 일화를 일반화하는 주장이다. 애초에 후퇴하는 아군들 몇 죽이려고 중무장한 독전대를 끌고 다니는 것은 병력과 자원의 낭비며, 공산당은 이러한 낭비를 지켜만 볼 정도로 무능한 집단은 아니었다. 또한 현실의 정치장교들은 뻘짓도 많이 했고 지휘 체계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었지만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가 죽어나갔고, 무엇보다 정치장교들은 공산당원이었고 독일군에겐 공산당원은 포로가 아닌 처형 대상이었다. 이런 독일측의 흑색선전은 자신들의 패배 원인을 소련인의 노예 근성으로 돌리고 소련인들의 애국심을 폄하하려는 독일군의 흑색선전에서 비롯되었다. 즉, 독일군은 애국심으로 싸우는데, 소련인들은 노예근성과 정치장교의 등떠밈으로 인해서 전선으로 밀려 보내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근거없는 낭설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 그대로 묘사되어 소련의 참전용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가 있다. 이는 포로가 된 정치장교에 대한 처형을 합리화하기 위한 독일군의 흑색선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형벌부대도 알려진 것보다 덜 잔인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자세한 점은 [[형벌부대]] 문서 참고. 소련군의 [[정치장교]]가 상당히 문제가 있는 조직이긴 했지만 적어도 군대의 기강을 잡고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으며 창설 목적은 군사 반란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용의자들을 체포하는 등의 문민통제를 위한 조직이었고, [[독일 국방군]]은 이와 비교하면 아예 정부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문민통제]]를 씹어먹는 조직이었던데다 [[페르디난트 쇠르너]]의 사례로 알 수 있듯 국방군은 프로이센 전통으로 꾸며져온 광기의 절정이었다. [[무장친위대]]는 본래 경호 조직으로 만들어졌을지 몰라도 결국 일선에서 학살과 전투를 병행하는 명목상 나치당 사실상 히틀러의 사병으로 변질되었으며 [[공군 야전사단]]이 괴링의 망상이 현실화된 존재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소련 정치장교의 비효율을 탓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 게다가 이렇게 독빠들이 과장하는 [[정치장교]]와 [[형벌부대]]는 소련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독일군은 그보다 한술 더 떴다. 독일군은 대전 초기부터 소련군 못지 않게 형벌부대를 운용했으며, 특히 패전이 임박하자 히틀러와 OKW(국방군 최고 사령부)는 낙오병 사살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소련군 폄하는 자신들이 하면 위대한 승리를 방해하는 낙오자들을 사살하는 것이지만 소련군이 하는 낙오병 사살은 패닉에 빠진 정치 장교들과 학살일뿐이라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무엇보다 2차대전기 독일은 결국 '''패배했다'''. 물론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저평가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거나 독일 정도의 강대국이 초기의 놀라운 전술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은 독일군의 궁극적인 '''대전략'''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반면 연합국은 전쟁 내내 막대한 희생을 치렀지만, 그 과정에서 소련은 넓은 영토를 통한 지연전과 막대한 인력을, 미국은 막대한 자본·산업력을, 영국은 정보 기술과 해상·공중에서의 우세 확보에 각각 집중하면서 자국이 가진 강점을 잘 활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치가 강대했다고는 하지만 온갖 반나치 세력을 감안하면 나치 독일이 유럽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늘날 [[독일]]이 유럽 연합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도 낮았고, 각론에서는 유능했을지언정 미국과 소련, 영국 등 주요 강대국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린 시점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실책을 저지른 것이었다. 군대의 목적은 질적·양적 팽창이 아니라 국가 전략에 맞게 최대한의 국익을 도모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미/소 양국의 지원을 받아 3차대전이 터지면 양쪽 진영을 대표해 유럽전선 최전방 탱커 겸 딜러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동독군]]/[[서독군]]이나 냉전 대립 구도 붕괴 후, 최소한의 역량만을 남겨두고도 필요한 일에는 충분히 임한 [[독일 연방군]]'''이 무적의 군대 취급을 받고 화려한 전공을 세웠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국가의 패망을 막지 못했던 [[독일 국방군]]보다 더 뛰어난 집단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