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동 (문단 편집) == 여담 == * 동동의 성격에 대해서는 [[민요]],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제의가로 보는 견해,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서정[[가사|시가]]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복합적 성격에서 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본래 민속과 관련된 단순한 [[민요]] 혹은 제의 때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 궁중악으로 채택되면서 서정적인 [[노래]]로 변모했다고 보기도 한다. *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해설이 실려 있다. >춤추는 대열[舞隊]과 악관(樂官) 및 기녀의 의관(衣冠)과 항차(行次)는 앞의 의례와 같다. 기녀 2인이 먼저 나가서 북쪽을 향하여 좌우로 나누어 서서, 두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떼어 춤을 추다가 절을 하고 나서 엎드린다. 일어나서 꿇어앉아 아박(牙拍)을 받들고 「동동사(動動詞)」의 첫 번째 구(句)를 창(唱)한다.,,【때로는 아박이 없기도 한다.】,, 모든 기녀가 따라서 합창하고, 향악(鄕樂)으로 그 곡을 연주한다. 두 기녀가 꿇어앉아서 아박을 띠 사이에 꽂고 음악의 1강(腔)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어나서고, 음악의 2강이 끝나면 두 손을 모으고 춤을 추고, 음악의 3강이 끝나면 (띠 사이에 꽂았던) 아박을 뽑아서 한 번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뒤로 물러났다 하는데, 한 번은 마주보고 한 번은 등지며, 음악의 절차에 따라 왼쪽을 보기도 하고 오른쪽을 보기도 하고, 혹은 무릎으로 혹은 팔로, 서로 치면서 춤을 춘다. 음악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두 기녀는 앞에서 했던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고 발을 떼어 춤을 추다가 절을 하고 나서 엎드렸다가 일어서서 물러난다. >동동이라는 놀이는 그 가사에 경사를 기리고 축하하는 말이 많은데, 대개 선어(仙語)를 본떠 지은 것이나 가사가 이어(俚語)이므로 싣지 않았다. >----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 中 동동(動動)''' 비록 간략하긴 하지만 [[고려]]시대 동동무(動動舞)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가사는 [[쌍화점]], [[만전춘]]같은 다른 [[고려가요]]보다는 수위가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전히 남녀 간의 [[사랑]]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남녀상열지사로 비판받기도 했으며, 결국 [[중종(조선)|중종]] 대에 와서 [[정읍사]]와 함께 폐기되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호동(여수)|소호동]]의 '소호동동다리'는 이 고려가요의 후렴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고려사]]》 〈악지〉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후기 소호동동다리의 인근 지역인 [[쌍봉동|장생포]]에서 시중(侍中) 유탁(柳濯) 장군이 왜구를 무찌르자, 군사들이 기뻐하며 〈장생포곡(長生浦曲)〉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는 군사들이 부른 노래를 〈동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다리의 이름을 확정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http://yeosu.grandculture.net/yeosu/toc/GC01331141|#]]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수제천, version=27)] [[분류:국악]][[분류:고려가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