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일로 (문단 편집) == 역사 == 애초 현재 성동-광진구, 중랑구, 노원구 등이 본격 개발되기 전에는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이 당시 도로는 현재도 면목로, 공릉로 등으로 남아 있는데, 이 지역의 본격적인 시가지 개발 전 과거에 자연발생적으로 좁은 시골도로를 따라 주거지가 생겼고, 이후 확장을 하려면 이에 따라 보상을 하여 진행했어야 했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는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분단 전후 시기였기 때문. 그러다 분단 이후 [[3번 국도]](당시 [[도봉로(서울)|도봉로]]-[[평화로(경기도)|평화로]]) 연선이 전략적 요충지가 됨에 따라 미군기지가 밀집하게 되어[* 지금은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시를 제외한 모든 부대가 평택에 있는 [[USAG 험프리스]]로 이전했다.] 도로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로 인해 영동지역에서 강북을 연결하는 [[영동대교]]가 1970년대 초 계획되면서 이에 따라 대체 포장도로가 건설되기에 이른다. 이에 영동대교를 기점으로 당시 성동구와 동대문구, 도봉구를 거쳐 의정부로 연결되는 동일로가 건설되게 된 것. 최초에는 서울 구간은 4차로, 의정부 구간은 2차로로 개통하였다. 이후 교통량이 급증함에 따라 80년대 말경 6차로로 확장이 계획됨과 동시에 통행량 분산을 위해 [[동부간선도로]]가 부랴부랴 건설된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역시 이런 이동 수요를 흡수하여 결과적으로 동일로와 동부간선도로의 통근수요를 줄이기 위함이 컸다. 그러나 1980~1990년대를 거쳐 [[노원구]]에 상계ㆍ중계지구, [[중랑구]]에 신내지구, 면목동 재개발 지역 등이 조성되고, 강남 개발과 수도권의 확장으로 [[의정부시]], [[양주시]], [[포천시]] 등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도로수요 증가를 6차로 동일로로는 현실적으로 버틸 수가 없어 상습 정체구간으로 변했다. 애초에 확장공사를 할 때 최소 8차선으로 넓혔어야 했다는 때늦은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어느 시기나 이미 시가지가 형성된 지역의 도로 확장은 예산과 인근 주민의 저항 때문에 쉬운 것은 아니니 동일로도 현실적인 문제에 의해 확장이 어려웠다고 봐야 맞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