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두무지 (문단 편집) == 특징 ==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와 같이 씨앗을 상징하는 신격이다. 바빌로니아의 탐무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도니스]], [[아나톨리아]]의 [[아티스]]처럼, 한번 죽어서 지하로 내려가 새로운 삶(식물)으로 지상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남성적인 힘을 상징한다. 1955년 국제표준 성서백과사전에는 두무지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여기 에스겔서 8:13, 14[* 그리고는 "이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또 보아라" 하시며 나를 야훼의 성전 북향 정문 문간으로 데리고 가셨다. 거기에서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즈신의 죽음을 곡하고 있었다.([[공동번역성서]])]에 기록된 이 신(탐무즈)은 천주교 성서에는 [[아도니스]]로 기록되었다. 그리스에 아도니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주God의 명칭은 바로 다름 아닌 [[페니키아]]의 아도나이인데, 이 이름은 [[히브리어]]에서도 같은 것이다. (중략) 이 신은 근본적으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에 해당하는 [[이슈타르]]의 남편 두무지라 불리는 [[수메르]] 또는 [[바빌로니아]]의 태양신[* 이건 오류로 고대 수메르-바빌로니아의 태양신은 이슈타르의 형제 우투-[[샤마쉬]]였다.]이었다. 이 신들의 예배가 일찍이 시리아에 탐무즈와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인에게는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신화로 나타났는데 이들은 이집트의 만신전에 나오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동격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졌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바빌로니아의 신화에는 겨울을 상징한 들곰에게 살해당한 아름다운 목동 두무지로 묘사되었다. 여신 이슈타르는 그를 생각해 오랫동안 몹시 슬퍼한 나머지 죽음에 사로잡힌 그를 구원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갔다.[* 이것도 오류로, 실제로는 이슈타르가 저승에 가 에레시키갈에게 당해 지상이 황폐화되자 엔키가 이슈타르를 살렸는데, 이에 에레시키갈이 가루다를 보내 추적하고 두무지가 이슈타르가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이슈타르가 두무지를 대신 저승에 보내버렸다. 다만 당시에는 판본해석이 되지 않아 잘못 알려져 있었다.] 탐무즈를 위한 이 애도가 바빌로니아에서는 탐무즈의 칭호를 받은 넷째 달 둘째 날이면 여인들로 인해 축제 분위기로 성황을 이루어버린다. (중략) > >게발의 여성들은 하지가 되면 아도니스 또는 탐무즈의 죽음을 찬미하기 위해 그의 신전에 가는 판례가 되어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경축제식과 관련해 욕정스러운 음분한 행사가 행해졌는데 그 제식의 풍속이 음탐하고 너무나도 추잡스럽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콘스탄티누스 마그누스]][*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공의회를 처음으로 연 황제로, [[이스탄불]]을 만든 사람이다.]가 철폐해 버렸다.”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방에 아도니스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물은 레바논 산지를 지나면서 모래에 포함된 산화철을 안고 흘러내린다. 매 4월이 되면 장마로 인해 강이 붉게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아도니스 또는 바알이 죽어 이 강물이 피에 물들어 붉어 보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따라서 이 강을 아도니스의 강이라고 부른다. 봄이 되면 엘에게 탄원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신전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러한 관습은 그의 부활절을 찬미하기 위해 부활절이 되면 이곳의 신부와 수녀들이 그들의 복식을 입은 채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 강에 와서 애도하는 관습으로 남아있다. 이슬람권의 기록에 따르면, 11세기까지도 [[이라크]] 지역에서 두무지를 애도하는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