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킬라 (문단 편집) === [[콜로세움 암살미수 사건]] === 루킬라는 아버지가 외치에 전념하는 동안 로마 내정에 간섭해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여장부였고, 어머니 생전부터 실권을 행사할 정도로 자신의 혈통과 지위에 대한 자존심, 개인적인 야망이 상당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년부터는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월권을 행사했고 그 영향력을 키웠으며, 원로원 내 여러 인사들을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했다. 그러나 이런 루킬라의 행동은 노골적이지 않았고, 마르쿠스 황제 생전에는 루킬라가 눈치를 보면서 한 까닭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버지 마르쿠스 황제가 붕어하자, 루킬라는 2년 동안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며, 자신에게 반항적으로 변할 수 있는 콤모두스와 올케인 크리스피나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사춘기 때 어머니 파우스티나를 여읜 콤모두스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들을 엄마처럼 의지하고 따랐다. 이때 그는 맏누나 루킬라와 큰 매형 폼페이아누스에게 심정적으로 많이 의지했는데, 이런 콤모두스에게 루킬라의 두 여동생과 루킬라의 남편 폼페이아누스는 진심을 다해 어린 황제를 도왔다.[* 루킬라의 182년 황제 암살미수 사건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들 중 루킬라의 두 여동생, 즉 둘째 딸 부부와 셋째 딸은 가담하지도 않았고, 무관했다. 이는 콤모두스의 여동생, 즉 루킬라의 막내동생도 마찬가지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막내 여동생 부부 중 마르쿠스 황제의 막내 사위는 루킬라의 황제 암살계획에 가담했다.] 하지만 루킬라는 본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과 대면대면한데다가 바로 아래의 두 여동생과 달리 콤모두스를 진심으로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원한과 불만이 커지더니, 급기야 동생 콤모두스가 후계자가 되고, [[브루티아 크리스피나]]가 아우구스타 직위에 오르자 동생 부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뺏어가고, 정치적 생명과 사회적 지위까지 모조리 끝장낼 것이라고 판단해 갈수록 증오심만 커졌다. 이 시기 루킬라는 자신의 자리가 되었어야 했던 황후 자리를 차지한 콤모두스의 아내 크리스피나를 유독 미워했다. 따라서 어처구니없는 악감정으로 182년 딸 루킬라 플라우티아, 두 번째 남편의 조카 중 상당한 완력을 자랑한 퀸티아누스, 루킬라와 내연관계였던 애인들, 콤모두스의 장인, 다른 여동생들의 남편들과 암살 음모를 꾸몄다. 루킬라는 이 모임의 주동자였으며, 안토니누스 황실 여성들과 친인척, 근위대장, 원로원 의원 등이 대거 참여한 루킬라의 황제 암살미수 사건은 콤모두스의 모든 것을 180도 바꿔버리면서, 콤모두스의 치세와 로마 전체를 그야말로 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사실 로마 귀환 직후, 콤모두스는 180년 10월 22일 정식 개선식을 올렸는데, 자신이 총애한 시종이었던 사오테루스를 황제 전용 마차에 태우고 개선행렬이 거행될 동안 수시로 사오테루스에게 키스를 하는 애정행각을 공개적으로 보인 행동 외에는 아직 폭군으로서의 광기, 피에 굶주린 과대망상적인 폭군으로서의 언행을 크게 일으키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로마인들에게 콤모두스는 "행동이 참 경박하다", “나이답지 않게 철이 없고 유순해보인다”는 비난 외에는 큰 비판거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맏누나인 루킬라는 콤모두스의 아내 크리스피나가 현직 황제의 황후가 되면서 자신이 점차 허울뿐인 아우구스타 지위를 갖게 된 것에 대해 상당한 위기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루킬라는 스스로 콤모두스 암살 계획을 주도해, 182년 암살을 실행에 옮겼다. 그녀의 조카였던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가 이때 완력이 상당하고 건장했던 콤모두스 암살을 담당했고, [[콜로세움]]에서 결행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퀸티아누스는 옷에 단도를 감추고 콤모두스가 [[콜로세움]]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황제가 가까이 오자 숨어 있던 곳에서 급히 달려 나오며 단도를 휘둘렀는데, 바로 황제를 찌르지 않고 >'''"원로원이 너에게 이 칼을 보내노라!"''' 라는 중2병스러운 대사를 외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이 말을 하는 사이에 퀸티아누스는 즉시 호위병에게 칼을 빼앗기고 붙잡혔다. 콤모두스 황제는 비록 몸에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암살 시도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 후에 사오테루스도 암살되자[* 별개의 싸움 중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한층 더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두 차례의 암살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큰 충격을 받은 콤모두스는 며칠을 끙끙 앓을 정도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병석에서 일어난 이후 완전히 사람이 변하더니 쓸데없는 의심병이 생기고, 이것이 도져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