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한 (문단 편집) === 의복 === >그 풍속에 의책(衣幘)[* 책(幘)은 당시 중국에서 남자가 쓰던 두건의 일종으로, 천으로 만드며 윗부분이 편편하다. 간혹 신분이 높은 사람은 그 위에 진현관(進賢冠)을 착용하기도 했다.]을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下戶)들도 군(郡)에 가서 조알할 때는 모두 의책을 빌려 입는다. 스스로 인수(印綬)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된다. >... >구슬을 보물로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걸기도 하지만, 금은과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 머리칼을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이 생겼다.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 그 고장 남자들 중에는 간혹 [[문신]]을 한 사람도 있다. >---- >《삼국지》 〈위지〉 동이전 ---- >금은보화와 비단, 모직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걸기도 한다. 대부분 머리를 틀어 묶고 상투를 드러내 놓으며,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짚신을 신는다. ... 남쪽 경계는 왜(倭)와 가까우므로 문신한 사람도 있다. >---- >《후한서》 〈동이열전〉 위의 기록처럼 마한의 유적에서는 장신구로 구슬이 많이 출토된다. [[유리]], [[수정(보석)|수정]], [[호박(보석)|호박]], [[마노]], 천하석(天河石) 등 다양한 재료를 가공해서 만들었고, 형태도 다양해서 따옴표처럼 생긴 [[곡옥]], 원통형 옥, 둥근 옥, 다면체 옥, 연주옥(連珠玉) 등 여러 형태의 구슬을 장신구로 사용했다. 물론 이런 장신구는 고위층들이 주로 사용했을 뿐, 대다수의 평민들은 《삼국지》의 기록처럼 [[상투]]를 틀고 베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가죽신 또는 짚신을 신었을 것이다. 한편 고위 관료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책(幘)이라는 관모를 쓰기도 했으며, 평민들도 한군현을 방문할 때 책을 빌려 입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문신]] 문화가 있었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변한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기록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한과 마한을 구분없이 기록한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후한서》에서는 마한에 문신이 존재하는 것이 [[왜나라|왜]](倭)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여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삼국지》 왜인전에서는 남자들이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마한의 문신 문화 역시 바다 건너 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