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한 (문단 편집) == 상세 == 3세기 중국의 사서 《[[삼국지(정사)|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마한의 소국명들이 나열되어 있으며, 《[[후한서]]》에는 총 54개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마한 거수국들 중 하나인 백제(伯濟)국이 고대 국가 백제(百濟)국으로 발전하면서 경기·강원 영서, 충청 서북·전북 서북, 충청 동남·전북 동남, 전남 순서로 차례로 병합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마한 거수국들은 6세기 초반까지는 백제의 직접 지배 세력으로 모두 편제되지 않았으나, 문자 기록이 상당히 적은 관계로 가야에 비해서는 덜 조명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적 연구가 활발해져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와 마한 사이 관계에 대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흔히 연맹체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각 세력별로 연합과 대립을 반복했기에 마한 54개 소국 전체가 단일한 연맹체라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많다. [[말 마]](馬) 자를 쓰고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정설이 없다. [[진한]]이나 [[변한]]은 왜 진, 변이 붙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지만 마한은 더욱 애매하다. 다만 일본 [[왜5왕]]이 중국 [[유송]]에 보낸 국서에서 마한을 음이 비슷한 모한(慕韓)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라는 뜻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저 [[고대 한국어]]를 [[음역(번역)|음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목지국]]의 유물 중 말 장식이 달린 [[허리띠]] 버클[[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2/2009092201844.html|#]]이 자주 발견되는 것을 보아 정말 [[말(동물)|말]] 자체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철기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3~2세기경부터 형성된 것으로 본다. 한반도의 고대사 기록이 매우 부실해서[* 삼한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중국 기록이 그나마 자세하고, 삼한 중 가장 영향력이 세고 컸기 때문. 진한도 서기 1세기에 중국에 사신을 보낸 적이 있어 기록이 조금 남아 있지만, 변한은 거의 기록이 없는 편에 속한다. 마한이 [[백제]], 진한이 [[신라]]로 정리되어 발전했는데 변한은 하나의 뚜렷한 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지 못한 채 여전히 여러 나라로 나뉜 연맹체제인 [[가야]]로 이어졌다. 이후 자체 기록이 거의 없이 멸망한 것 때문인 것도 있다. 하지만 진한이나 변한의 소국들이 신라의 기록을 토대로 작성된 《[[삼국사기]]》나, 삼국시대 후기의 사실이 자세하게 기록된 부분이 많은 《[[일본서기]]》 덕에 위치 비정이 비교적 수월하고 고고학적 자료도 풍부하게 나오는 데 비해 마한의 소국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내용이 워낙 부실하고 백제 초기의 자료가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그래도 최근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축적되면서 나름 역사상이 업데이트되고 재구성이 이뤄지고 있긴 하다.] 위치나 영역에 대한 것들은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토대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고조선에서 [[위만]]에게 쫓겨난 [[준왕]]이 도피해 세운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건마국]]이 잠깐 맹주국이었으나, 이후 이 지역이 한나라 및 [[한사군]]과의 교역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단계에서는 [[목지국]]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며 소국 연맹 형태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마한을 구성하는 소국의 개수는 《[[후한서]]》에 54개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달리 말하면, 중국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세력이 큰 마한 내 도시국가체가 54개나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목록을 보면 당시 바다 건너 중국과 교류가 쉬운 [[서해]] 및 [[남해]]에 인접한 지역 위주다. 따라서 한반도 내륙에도 여러 성읍국가가 있었는데 기록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국립청주박물관]]은 2019년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충북]] 지역에서도 1~3세기 마한계 소국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면서 충북 지역 소국들이 《삼국지》 기록에서 빠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처음에는 마한 [[목지국]] 휘하 거수국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한성백제|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안성천-아산만 일대, [[금강]] 유역권 일대, 섬진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 [[전남]] 서남부 일대의 소국들을 차례대로 해체시켜가면서, 중앙집권 체제 하에 완전히 합병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한 소멸 시기 및 백제로의 편입과정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일단 《삼국사기》 초기 기록대로 [[근초고왕]] 당시 모든 마한 거수국을 직접 지배 영역으로 편제했다는 학설은 거의 부정된 편이다. 마한 연맹에 속했던 모든 지역은 백제가 다분히 일방적으로 짜놓은 병합 프로그램에 따라 공납-간접 지배-직접 지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다만 이 병합 진척도가 대체로 백제국에 보다 가까웠던 순으로 경기-충청-전라 순이었던 것이었고, 특히 전라도 중에서도 목지국이 거수국이었던 시절부터 실력이 만만찮았던 [[침미다례|전남 서남부 일대]]가 적어도 6세기 전반까지 자치력을 더 강하게 지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충청도 남부 일대는 [[목지국]]의 저항 탓에 전북 서북부보다 백제 직접 지배화가 늦어졌고, 전라도 동부 일대는 간접 지배로는 백제에게 더 일찍 영향권에 들어갔으나 [[반파국|반로국]]이 주도하는 가야 연맹의 일원으로 포섭되어 아예 백제의 영향권 자체에서 이탈하다 백제와 무력 대결까지 벌이는 등 소소한 차이가 꽤 많다. 단, 마한이라는 호칭 자체의 사용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4세기 초에는 소멸했다고 봐야한다. 282년 [[신미국]]이 서진에 조공을 보낼 때 마한이란 명칭을 사용하여 해당 호칭이 목지국이나 백제국만의 전유물은 아님을 입증했지만 그 이후에는 아예 사용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백제의 강력한 견제와 압력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