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한 (문단 편집) ==== 마한 정복 시기에 대한 문헌사학계의 반론 ==== 윗 문단의 내용은 주로 고고학을 증거로 한 것으로, 근초고왕 이후로도 마한 세력이 잔존하다 무려 6세기, 백제의 웅진 천도 시기나 되어서야 마한계 반독립적인 소국 세력이 소멸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윗 문단 각주에 서술한대로 문헌사학계에서는 근초고왕 대 마한 완전정복을 대체로 인정하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일본서기]]》 〈신공기〉에 대한 불신을 근거로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을 부정할 수 없다. 위에 서술된 대로, 근초고왕 대 마한 정복을 기술한 일본서기 신공기는 중국 위나라에 조공한 [[히미코]]와 [[토요]] 대의 치세를 덮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임이 명확하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서기 신공기에 나타난 백제의 마한 공략 기록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는 연결될 수 없다. 진구황후부터가 가상인물이고 신공기의 거의 대부분의 기록들이 날조, 또는 윤색된 것은 맞지만[* 아예 완전히 개뻥은 아니다. 230년에 중국 위나라에 사신을 보낸 기록 같은 경우 대놓고 《[[삼국지]]》의 히미코 관련 기사를 베낀 것이라 이 부분은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아예 가짜라고 볼 수는 없다. 마치 일본서기에서 소위 [[백제삼서]]라 불리는 백제 역사서를 인용할 때 천황에 대한 찬양이나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내용이 들어갔다고 해서[* 일본인들이 백제삼서를 인용할 때 그 내용을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부 수정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백제삼서 인용 기록 자체가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소리와 같다. 그리고 [[침미다례]] 및 호남 지역 5국 정복을 마한 평정과 연결하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침미다례가 마한 자체에 대한 지칭어로는 쓰이지 않을지언정 엄연히 목지국 휘하의 마한 거수국들 집단이었으며 목지국 몰락 후부터는 마한 칭호를 놓고 백제와 갈등을 벌였기 때문이다.[* 《[[진서]]》에서 3세기 이후의 마한을 표현할 때 아예 '신미(침미다례) 등'이라 표현할 정도로 침미다례국의 비중이 목지국을 막 쓰러뜨린 시점의 백제에 못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령 고고학계의 주장대로 전남 마한계 소국들이 6세기까지 독립성을 유지했다 한들, 침미다례가 백제에게 '도륙'된 이상 이걸 백제가 전남 지역을 6세기까지도 지배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다. 게다가 고고학적으로 봐도 침미다례의 영향력은 이상할 정도로 전남 서남부에 국한되어 있었던 데다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 움츠러들었다.[* 침미다례는 본디 오늘날 전북 서남부까지 영향력을 미쳤고, 훗날 침미다례의 주축인 나주 세력과 갈등을 빚게 된 광주는 원래 침미다례와 같은 문화권이었다. 백제가 광주 세력 및 전북 서남부 일대를 회유해서 침미다례에게서 먼저 떼어낸 것이다. 게다가 한성 함락 이전에는 부장품의 종류마저 줄어들었다. 이 또한 백제의 감시와 견제가 없었다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즉 침미다례는 엄연히 백제의 간접 지배 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동성왕 대 탐라 정복 시도 기사에서 탐라가 제주도가 아닐 수도 있다느니 했는데, '''탐라는 제주도가 맞다.''' 위의 주장은 언어학적으로 보자면 단순히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 * 고고학적 변화는 문헌적 변화보다 늦게 나타난다. 마한계 유적과 백제계 유적은 이래저래 차이점이 꽤 크고,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전남 지역에서 고고학적 독자성이 6세기까지 유지되었다는 것이 백제가 이 지역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평양을 비롯한 [[낙랑군|낙랑]] 지역을 4세기 초반인 313년에 정복했다. 하지만 구 낙랑 지역에서 낙랑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고 고구려화되는 것은 [[장수왕]]의 평양 천도 즈음인 5세기의 일이고, 한술 더 떠 비슷한 시기에 정복한 낙랑 남쪽의 대방군은 6세기는 되어야 고구려화된다. 그렇다면 이것도 낙랑과 대방이 5세기, 6세기까지 살아있었다는 증거인가? 이상의 근거들을 통해, 문헌사학계는 학자마다 조금씩 이견이 있기는 하나 독립적인 세력으로서의 마한 집단은 근초고왕 대에 소멸된 것이 맞다고 본다. 상술한 바와 같이 고고학적으로도 4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이 충청도 및 전라도에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상, 이는 문헌학계만의 의견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