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어 (문단 편집) === 19~20세기 === 19세기 [[가경제]], [[도광제]], [[함풍제]] [[황제]]들은 여러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한가하게(?) 정체성 확립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청나라는 동치 연간 [[양무운동]]을 계기로 한인 신사층들이 중용되며 사실상 한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만어를 잘 못해도 공무 및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으며, 설상가상으로 [[서태후]] 시대에는 아예 만한합벽의 원칙을 폐지하여 한어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최후반에는 [[만주족]] 황제조차도 만주어를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는 모어가 한어였으며 만주어는 [[청나라 소조정]] 시절에 열심히 배운다고 배웠음에도 거의 익히지 못해 "일어서"라는 의미의 "일리" 한마디만 겨우 했다. 청나라 멸망 이후에 만주어는 일상 언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서태후]] 시절부터는 아예 만주족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에서도 한어, 즉 [[중국어]]만 쓰였다. [[윤승운]] 화백은 "1930년대 외국 학자가 만주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간신히 두메산골의 노부부만 찾을 수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누르하치]]가 통탄할 노릇."이라는 논평을 남기기도 했다. 선통제의 자서전에서는 옛날 공부할때 만주어 성적이 가장 나빴다는 언급이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의 회고록에 따르면 선통제의 만주어 성적이 가장 나빴으나 부지런하게 공부해서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고, 또 더 공부해서 만주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문맹이라도 모어의 일상적인 회화 정도는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가 없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때 만주족 황실에게 있어서 만주어는 이미 사실상 [[외국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231556141|현대 만주어의 현황은 이 기사]]를 참조.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아시아 최고강대국의 공용어로 끝발 날리던 민족의 언어가 바로 지금 사라져 가는 현실… 만주족들은 그래도 청 왕조가 세워진 후 [[귀족]]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 현재 [[중국인]] 중에서는 교육수준이 높다고 한다. 학계나 예술계에도 만주족이 많다고. 그런데 언어와 문화는 이미 한족에 흡수된지 오래다. 만주족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신분증에 표시된 민족 표시 뿐이고, 가끔씩 [[아이신기오로]](Aisin Gioro) 씨 같은 만주족 성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그것도 진(金) 씨로 치환되어서 이름 보고는 구별하기 힘들다. 중국의 진(金) 씨는 조선족이 아니면 대체로 만주족이다. '''현재 중국의 만주족 중에 만주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은 100명 이내라 사실상 사멸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소멸위기언어]]다.''' 물론 만주족이 일방적으로 중화문화와 한족에 동화되기만 한 건 아니고 만주족이 상용하던 중국어가 바로 [[표준중국어]]의 바탕이 되었다.[* 즉 모어가 만주어인 만주인 고관들이 상용했으며, 중국어모어 화자가 듣기에 어딘가 부자연스럽던 그들의 중국어가 [[표준중국어]]가 되었다는 셈이다. 말하자면 [[콩글리시]]가 영어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영어도 마찬가지인데, 프랑스어가 모어인 [[노르만인]]들이 [[고대영어]]를 쓰던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이들에게 언어적으로 동화되었지만, 노르만인들이 쓰던 부자연스럽던 영어가 표준영어가 되면서 중세영어는 고대영어와 형태가 상당히 바뀌어버렸다.] 표준중국어를 서양에서는 [[만다린]]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그 일설에 의하면 청나라 시기에 이 언어를 최초로 배웠던 서양인 선교사들은 중국인들이 이 언어를 만주인들 (满大人:만다런-직역으로 만주족 어르신들)이 쓰는 언어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했다.[* 또는 [[말레이어]]의 고관을 뜻하는 menteri에서 파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간에 "[[높으신 분들]]이 쓰는 언어"에서 유래한 것은 둘 설 모두 같다.] 만주어 차용단어가 [[관화]]의 북경 방언[* 북경 방언과 북경 표준어([[보통화]])는 다르다. 북경 표준어는 근현대 중국 정부가 북경 방언을 다듬어 만들어낸 국가표준어지만 북경 방언은 수백년간 북경 시민들이 써오던 토착방언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서울말을 다듬어 만든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와 [[서울 방언]]은 다르다.]과 동북 방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긴 했다. 그리하여 중국 아나운서 상당수는 만주족의 본거지였던 [[랴오닝성]]-[[헤이룽장성]] 출신이 많은데, 그 이유는 여기 발음이 표준중국어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랴오닝성]] 선양 방언이 만주어 단어 차용도가 제일 높다고 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방송인 [[장위안]]이 바로 여기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만주국]]에서 청년기를 보낸 [[박정희]]와 [[김일성]]이 만주어에 능숙했다고 알려져있기도 하지만 이건 와전이다. 왜냐면 만주에 들어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에서는 [[표준중국어]]를 '만어' 즉 '만주어'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진짜 만주어는 당시에도 이미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만주국에서 그냥 무시해 버렸다.[* 인구 절대 다수가 한족인 만주를 직접 점령도 아니고 괴뢰국으로 통치해야 하는 일본은 대다수 중국인에게 너희는 중화민국과는 다르다는 정체성을 어떻게든 심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온갖 수를 다 동원했고 이 과정에서 선통제도 데려와서 옹립했다. [[왕도낙토]]의 [[오족협화]] 낙원이라는 [[대동아공영권]]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의 프로파간다는 이미 [[틈관동]] 이래 만주에 들어찬 대다수 한족 만주국인들에게 씨알도 안 먹혔다. 한편 만주족들은 만주국 수립 이전까진 터줏대감으로 어느 정도 대접받는 지위에 있었으나 만주국 수립 이후에 일제는 [[일본어]]도 못하는 만주족들이 활용가치가 없어서 그 자리를 조선인들로 채워버린 탓에 만주족 지위는 만주국 건국 이후 완전히 [[소수민족]]으로 더욱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만주국에서 말하는 [[만주]]인은 [[한족]]과 [[몽골인]]이었고 [[만주국]]은 [[중국어]]와 [[몽골어]], [[러시아어]]가 형식상 [[공용어]]였다. [[만주족]]은 대다수가 이미 [[한족]]화되었으며 일부는 [[몽골인]][* [[신해혁명]] 당시 [[열하]]나 [[내몽골 자치구|내몽골]] 내지는 만주 서쪽의 몽골족 거주지로 도망친 이들.], [[한민족]][* [[랴오닝성]] [[번시시]]의 번시 박씨의 경우 청나라 때는 만주팔기로 분류되었다가 이후 한족으로 재분류되었고, 1982년에는 조선족으로 재분류되었다. 그리고 신해혁명을 피해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친 만주족도 일부 존재했으며, 그런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있다.[[https://m.dcinside.com/board/war/3255695|#]]], [[둥간족]][* 신장 일대에 주둔하던 일부 만주족들이 한족이나 [[후이족]]들과 함께 [[코칸드 칸국]]에 의해 전쟁포로가 되어 [[중앙아시아]] 각지에 노예로 팔렸는데, 이러한 연유로 둥간족 일부는 만주족 조상을 두고 있다.]에 동화되어 버렸다.[* 20세기 초반 만주에 거주하던 중국인의 주류민족은 만주족이 아니었다. 만주족은 청나라가 [[중원]]을 제패하면서 상당수가 중원으로 넘어가 살았고, 만주는 청나라 시대 내내 인구가 희박한 빈 땅이었다가 19세기 중반 경부터 주로 [[산동성]]에 거주하던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와서 오늘날의 동북 3성 주민이 된 것이다. 당연히 그 이주자들의 언어는 만주어가 아닌 중국 [[화북]] 지방의 [[관화]]였다.] 그 당시에도 우리가 만주어라고 지칭하는 언어는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공용어 중에 하나로 지정할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