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단장시 (문단 편집) == 역사 ==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바로 이 무단장 시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단장 시의 [[현급시]]인 닝안(宁安) 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무단장 시에 가면 발해 유적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나라의 주요 유배지로 유명한 [[영고탑]] 역시 오늘날의 무단장시 지역이다. 닝구타, 한자로는 영고탑이라 부른 이 지역은 예로부터 '''유형'''지로 유명했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소련]]까지도 [[러시아]]에는 전쟁포로나 죄수들을 [[시베리아]]로 보내는 전통이 있었듯 [[청나라]]는 사고 친 죄수들을 닝구타로 보냈다. 그것도 마차나 수레조차 일절 없이 '''걸어서''' 가라 떠밀었고, 본격적으로 이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많은 죄수들이 사망했다. [[중국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사망 플래그]]와 같은 지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18세기 후반~19세기에는 새로 청나라가 정복한 [[신강성]] 역시 유배지로 많이 보내게 되어 옛날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지역이 도시다운 도시로 개발된 역사는 불과 7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곳은 본래 목단강 연안 습지대인데다 원주민의 삼림 지대로 인가가 없는 황무지였고, 청나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도 이 지역에 대해서는 한동안은 딱히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둥칭 철도를 부설할 때 (구) 무단장 역이 설치되었고, 청나라의 붕괴와 함께 많은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이주하여 농업 등을 시작했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만주 동부의 광산자원과 산림자원 개발 및 연해주, 소련에 대한 장래의 군사 작전을 위해 많은 철도가 부설되었다. 1934년 투먼과 닝안을 잇는 투닝선(图宁线)의 전 노선이 개통하면서 닝베이 역 부근에는 수천 명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정착했고, 역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1937년 12월, 무단장 성이 분리되면서, 닝베이 역 부근의 도시는 그 성도인 무단장 시가 되었다. 무단장 시는 동만주의 거점으로서 관동군이 기지를 두고 일본의 다양한 회사가 목재, 화학 식품 등의 공장이 진출해 공업 도시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한편, 산지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항일 부대의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무단장은 1945년 8월에 소련이 점령했다가 이후 중국공산당군이 점령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무단장성의 일부였다가 [[헤이룽장성]] 관할로 재편되었다. 무단장 시는 둥베이 최고의 공업도시로 많은 공장과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다.[[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B%8B%A8%EC%9E%A5%EC%8B%9C|자료 출처]] 무단장시 사회과학원 인근 강변의 빈강(濱江) 공원에는 동북항일연군 여성대원 8인의 거대한 동상과 기념비가 있고 '팔녀투강(八女投江)'이라고 쓰여 있는데, 1938년 [[일본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될 위기에 놓이자 강에 투신하여 자결한 인물들이다. 자세한 것은 [[동북항일연군#s-3.2]]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