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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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장 시는 중국 헤이룽장성에 속한 지급시로 이름의 유래는 송화강의 지류인 목단강(牡丹江)에서 유래했다. 전광용의 단편소설 <목단강행 열차>에서 말하는 목단강이 바로 이곳을 말한다. 그래서 목단강시라고도 부른다. 무단장 시의 면적은 무려 40,435km2로 이것은 경상도(32,285.22km2)보다 약 1.3배 정도 더 크고 네덜란드의 면적과 비슷하다. 슈퍼주니어의 前 멤버 한경이 바로 이 도시 출신이다.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바로 이 무단장 시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단장 시의 현급시인 닝안(宁安) 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무단장 시에 가면 발해 유적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나라의 주요 유배지로 유명한 닝우타(Ningguta)[1] 역시 오늘날의 무단장시 지역이다.
닝우타, 한자로는 영고탑이라 부른 이 지역은 예로부터 유형지로 유명했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소련까지도 러시아에는 전쟁포로나 죄수들을 시베리아로 보내는 전통이 있었듯 청나라는 사고 친 죄수들을 닝우타로 보냈다. 그것도 마차나 수레조차 일절 없이 걸어서 가라 떠밀었고, 본격적으로 이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많은 죄수들이 사망했다. 중국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사망 플래그와 같은 지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2] 그래서 이 지역이 도시다운 도시로 개발된 역사는 불과 7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곳은 본래 목단강 연안 습지대인데다 원주민의 삼림 지대로 인가가 없는 황무지였고, 청나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도 이 지역에 대해서는 한동안은 딱히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둥칭 철도를 부설할 때 (구) 무단장 역이 설치되었고, 청나라의 붕괴와 함께 많은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이주하여 농업 등을 시작했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만주 동부의 광산자원과 산림자원 개발 및 연해주, 소련에 대한 장래의 군사 작전을 위해 많은 철도가 부설되었다.
1934년 투먼과 닝안을 잇는 투닝선(图宁线)의 전 노선이 개통하면서 닝베이 역 부근에는 수천 명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정착했고, 역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1937년 12월, 무단장성이 분리되면서, 닝베이 역 부근의 도시는 그 성도인 무단장시가 되었다. 무단장시는 동만주의 거점으로서 관동군이 기지를 두고 일본의 다양한 회사가 목재, 화학 식품 등의 공장이 진출해 공업 도시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한편, 산지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항일 부대의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무단장은 1945년 8월에 소련이 점령했다가 이후 중국공산당군이 점령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무단장성의 일부였다가 헤이룽장성 관할로 재편되었다. 무단장시는 둥베이 최고의 공업도시로 많은 공장과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다.자료 출처
무단장시 사회과학원 인근 강변의 빈강(濱江) 공원에는 동북항일연군 여성대원 8인의 거대한 동상과 기념비가 있고 '팔녀투강(八女投江)'이라고 쓰여 있는데, 1938년 일본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될 위기에 놓이자 강에 투신하여 자결한 인물들이다. 자세한 것은 동북항일연군 참조.
40,000km2를 넘는 광활한 면적과는 달리 인구는 270만 명 정도로 그다지 많지는 않다. 1930년대 이전까지 이 지역에 사는 민족은 대부분 만주족이었으나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현재는 한족이 가장 많다. 이들은 대개 산둥성이나 허베이성 출신들이다. 그 밖에 총 38개의 소수민족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소수민족들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조선족들이다. 특이하게 이 곳 조선족들은 대개 경상도 출신들이라고 한다. 랴오닝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주로 평안도 출신이고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주로 함경도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이질적인 부분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는 10만 3,526명[3] 으로 하얼빈에 이어 두번째로 헤이룽장성에서 많은 숫자이다.
무단장 시의 기후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 동계 건조 기후에 속한다. 그 정도로 겨울이 매우 춥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무단장의 최한월 평균기온은 무려 -16.6℃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위도는 그렇게 높진 않다. 무단장 시의 위도는 고작 북위 44° 33′으로 이탈리아의 볼로냐(북위 44° 30′ 27″)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그러나 볼로냐의 1월 평균기온은 2.8℃로 위도 상 한참 남쪽인 북위 35° 10′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 1월 평균기온(3.2℃)과 비슷하다. 위도는 비슷한데 무단장이 볼로냐보다 무려 20℃ 가까이 더 낮은 셈이다.
그렇다고 여름이 서늘한 편도 아니다. 무단장 시의 최난월 평균기온은 22.3℃까지 올라간다. 평균 최고기온은 28℃에 달할 정도로 덥다. 즉, 여름은 제법 더운 편이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편으로 사람 살기에 그리 적합한 기후는 아니란 뜻이다. 덕분에 연교차는 무려 39℃에 달할 정도로 크다. 연 강수량은 537mm로 건조기후 지역과 근접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무단장 하이랑 공항이 있어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가 직항한다. 그 밖에 무단장역도 있다. 아직 이곳엔 도시철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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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무단장 시는 중국 헤이룽장성에 속한 지급시로 이름의 유래는 송화강의 지류인 목단강(牡丹江)에서 유래했다. 전광용의 단편소설 <목단강행 열차>에서 말하는 목단강이 바로 이곳을 말한다. 그래서 목단강시라고도 부른다. 무단장 시의 면적은 무려 40,435km2로 이것은 경상도(32,285.22km2)보다 약 1.3배 정도 더 크고 네덜란드의 면적과 비슷하다. 슈퍼주니어의 前 멤버 한경이 바로 이 도시 출신이다.
2. 역사[편집]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바로 이 무단장 시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단장 시의 현급시인 닝안(宁安) 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무단장 시에 가면 발해 유적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나라의 주요 유배지로 유명한 닝우타(Ningguta)[1] 역시 오늘날의 무단장시 지역이다.
닝우타, 한자로는 영고탑이라 부른 이 지역은 예로부터 유형지로 유명했다.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소련까지도 러시아에는 전쟁포로나 죄수들을 시베리아로 보내는 전통이 있었듯 청나라는 사고 친 죄수들을 닝우타로 보냈다. 그것도 마차나 수레조차 일절 없이 걸어서 가라 떠밀었고, 본격적으로 이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많은 죄수들이 사망했다. 중국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사망 플래그와 같은 지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2] 그래서 이 지역이 도시다운 도시로 개발된 역사는 불과 7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곳은 본래 목단강 연안 습지대인데다 원주민의 삼림 지대로 인가가 없는 황무지였고, 청나라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제국도 이 지역에 대해서는 한동안은 딱히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둥칭 철도를 부설할 때 (구) 무단장 역이 설치되었고, 청나라의 붕괴와 함께 많은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이주하여 농업 등을 시작했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이 탄생하면서, 만주 동부의 광산자원과 산림자원 개발 및 연해주, 소련에 대한 장래의 군사 작전을 위해 많은 철도가 부설되었다.
1934년 투먼과 닝안을 잇는 투닝선(图宁线)의 전 노선이 개통하면서 닝베이 역 부근에는 수천 명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정착했고, 역 주변에 바둑판 모양의 도시 계획이 이루어졌다. 1937년 12월, 무단장성이 분리되면서, 닝베이 역 부근의 도시는 그 성도인 무단장시가 되었다. 무단장시는 동만주의 거점으로서 관동군이 기지를 두고 일본의 다양한 회사가 목재, 화학 식품 등의 공장이 진출해 공업 도시로서 인구가 급증했다. 한편, 산지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이 항일 부대의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무단장은 1945년 8월에 소련이 점령했다가 이후 중국공산당군이 점령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무단장성의 일부였다가 헤이룽장성 관할로 재편되었다. 무단장시는 둥베이 최고의 공업도시로 많은 공장과 이민자들이 모여 들었다.자료 출처
무단장시 사회과학원 인근 강변의 빈강(濱江) 공원에는 동북항일연군 여성대원 8인의 거대한 동상과 기념비가 있고 '팔녀투강(八女投江)'이라고 쓰여 있는데, 1938년 일본군과 싸우다가 포로가 될 위기에 놓이자 강에 투신하여 자결한 인물들이다. 자세한 것은 동북항일연군 참조.
3. 인구와 민족[편집]
40,000km2를 넘는 광활한 면적과는 달리 인구는 270만 명 정도로 그다지 많지는 않다. 1930년대 이전까지 이 지역에 사는 민족은 대부분 만주족이었으나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현재는 한족이 가장 많다. 이들은 대개 산둥성이나 허베이성 출신들이다. 그 밖에 총 38개의 소수민족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소수민족들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조선족들이다. 특이하게 이 곳 조선족들은 대개 경상도 출신들이라고 한다. 랴오닝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주로 평안도 출신이고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이 주로 함경도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이질적인 부분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는 10만 3,526명[3] 으로 하얼빈에 이어 두번째로 헤이룽장성에서 많은 숫자이다.
4. 기후[편집]
무단장 시의 기후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 동계 건조 기후에 속한다. 그 정도로 겨울이 매우 춥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무단장의 최한월 평균기온은 무려 -16.6℃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위도는 그렇게 높진 않다. 무단장 시의 위도는 고작 북위 44° 33′으로 이탈리아의 볼로냐(북위 44° 30′ 27″)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그러나 볼로냐의 1월 평균기온은 2.8℃로 위도 상 한참 남쪽인 북위 35° 10′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부산광역시 1월 평균기온(3.2℃)과 비슷하다. 위도는 비슷한데 무단장이 볼로냐보다 무려 20℃ 가까이 더 낮은 셈이다.
그렇다고 여름이 서늘한 편도 아니다. 무단장 시의 최난월 평균기온은 22.3℃까지 올라간다. 평균 최고기온은 28℃에 달할 정도로 덥다. 즉, 여름은 제법 더운 편이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운 편으로 사람 살기에 그리 적합한 기후는 아니란 뜻이다. 덕분에 연교차는 무려 39℃에 달할 정도로 크다. 연 강수량은 537mm로 건조기후 지역과 근접할 정도로 적은 편이다.
5. 교통[편집]
무단장 하이랑 공항이 있어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가 직항한다. 그 밖에 무단장역도 있다. 아직 이곳엔 도시철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