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명왕후 (문단 편집) === [[김유신|오빠]]의 꾀로 맺어진 인연 === 그래서 기어코 눈이 맞은 춘추와 문희가 정을 통하여 아이를 가졌는데, 김유신은 김춘추의 아기인 것을 모른 척하고 화를 내면서,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기를 밴 문희는 가문의 수치니 불태워 죽이겠다고 문희를 기둥에 묶고 장작을 쌓은 채 불을 질렀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 [[선덕여왕|덕만공주]][* 김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태어난 문무왕이 아직 [[진평왕]] 치세였던 626년생이므로 당시 선덕여왕은 왕이 아니라 [[공주]] 신분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김춘추는 덕만공주의 자매인 [[천명공주]](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사서마다 기록이 달라 가설이 여럿 있다)의 아들이라, 김춘추에게는 이모이기도 하다.]가 산에 올라가서 서라벌을 관망하는 날이었다. 단 판본에 따라서는 아예 김유신이 날짜를 미리 확인한 뒤, 젖은 장작을 써서 연기를 피웠다는 말도 있으니 하필이 아니라 [[계획대로]]에 가까울지도. 덕만공주가 연기를 보고 그 연유를 물으니 주위에서는 김유신의 누이가 외간남자의 아이를 가졌으며, 이에 분노한 김유신이 누이를 태워 죽이겠다고 저런다는 얘기를 일러바쳤다. 덕만공주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자 옆에 있던 김춘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자신이라고 자백했다(...). 이에 덕만공주가 얼른 가서 여인을 구하라고 명하여 김춘추가 급히 말을 달려 [[계획대로|문희를 구하고 그녀에게 장가들었다]]는 것이다.[* 사극 [[대왕의 꿈]]에서는 김춘추 역의 최수종이 거의 [[매트릭스]] 수준의 액션을 연출하며 문희를 구하러 뛰어드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후에 [[근친상간|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외숙부인 김유신에게 시집갔고]] 후에 [[지소부인]](智炤夫人)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판 [[키잡]]인가.-- --여동생을 주고 조카와 결혼한다.--[* 애시당초 신라는 왕족간의 근친상간, 족내혼이 흔했던 국가이다. 김춘추도 자기 모친인 천명공주하고 6촌 남매간이였으며 따지고 보면 김문희는 [[김숙흘종]]의 외손녀, 김춘추는 김숙흘종의 형 [[진흥왕]]의 증손자이자 현손자니 이 부부도 조카-7촌 고모이자 조카손자-이모할머니 관계이다.]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스러운 요소가 많은 설화인데 이런 과정이 구체적 사건으로서는 역사적인 신빙성은 사실상 매우 낮으며 다만 여러모로 금관[[가야]]계와 신라 [[진골]]귀족의 혈통이 섞여 있었던 김유신의 혈통 때문에 신라 왕실의 성골에 매우 가까운 진골인 김춘추에게 문희가 시집가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야기이다.[* 다만 김유신이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결혼 전 [[성관계]]나 [[임신]]은 있었고 이로 인해 결혼했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은 있다.] 문희의 [[김서현(신라)|부]][[만명공주|모]]도 혼전임신으로(...) [[김유신|그녀의 오빠]]를 낳았으니 집안 내력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듯하다...~~가문 종특인가...~~ 그것도 같은 [[김해 김씨|금관국 왕가 출신 김씨]]와 [[경주 김씨|신라 왕가 김씨]] 사이에서(...).[* 다만 부모 세대에 남녀는 남자가 김해 김씨, 여자가 경주 김씨로 반대였다.] 유전이라기 보다는 [[김유신]]이 바로 자기의 탄생 관련 일화에서 발안해 문희를 춘추에게 확실히 꽂기 위한 계략이었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