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화대혁명 (문단 편집) == 현대 중국에서의 인식 == >'''당과 국가, 각 민족 인민들에게 심각한 재앙을 가져온 내란(给党,国家和各族人民带来严重灾难的内乱。)''' > >'''1966년 5월부터 1976년 10월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으로 당과 국가, 인민은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겪었다.(1966年5月至1976年10月的“文化大革命”,使党、国家和人民遭到建国以来最严重的挫折和损失。)''' >---- >[[https://baike.baidu.com/reference/117740/5ccd5cM92xV0KNxetUdh0zZNyzmhU5qgJusWd-IIqClKZ5t2COi6q_gG60B2E9x7-3KaD9r9fgqDkjtZZoRDZOZqG1jZBZxpiAbnakQLrE03fRA-og|공화국의 발자취—66년 : '문화대혁명' 10년 내란 시작]]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77307894_943415819559531_4183553534848090075_n.jpg|width=100%]]}}} || >백악관에서 (등소평과) 저녁식사 중 영화배우 [[셜리 맥클레인]]과 한 해프닝이 있었다. 맥클레인은 문화대혁명 당시 1970년대 초기에 중국을 방문했었으며, 모택동사상의 사회개혁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1979년 백악관에서의 저녁식사 중, 맥레인은 중국의 농장에서 야채를 키우는 교수를 만났을때를 회상했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연구를 중단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것에 슬픔을 느끼냐고 질문했고, 교수는 가난한 농부들과 함께 노동하며 배울 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등소평은 이야기를 들은 후 잠시 멈춘 뒤, '''"그 교수는 거짓말을 했다"'''고 대답했다. 맥클레인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카터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https://global.oup.com/academic/product/chinas-quest-9780190884352|"China's Quest," John W. Garver. Oxford University Press]] 2008년에 이원복 교수가 중앙일보에 낸 교양만화 <세계사 산책> '역사의 상처' 편에선 세계적으로 치욕적인 금기어 중 하나로 언급됐는데, 만에 하나 중국인들과 역사 얘기를 할 시에 이 사건 얘기는 안 꺼내는 게 예의이다. 학교에서도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는 것과 함께, 중,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이 [[마오쩌둥]]의 실책임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이후에 끼친 영향까지 자세하게 가르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863022?sid=104|#]] 어문(중국의 국어) 과목에도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도 가르치며 당시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비판한다. 또한,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들이 점차 늙어가고 있기 때문에 젊은세대에서는 이미 지난 세대들의 일로 여기는 듯 하다. 중국의 공식언론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단어도 꼭 따옴표를 붙여서 '''"文革"''' 또는 '''"文化大革命"'''이라고 한다. 원래 공산당 입장에서 혁명이란 단어는 긍정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워낙 문혁은 흑역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따옴표를 치는 것이다. [[덩샤오핑]] 집권기의 개혁개방 이후로 국가 주석도 여러 번 바뀌고 사회가 점진적으로 바뀌며 현재 젊은 세대들은 문혁이 실책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배우면서 자란다. 현재 중국공산당 핵심세력이 바로 문화대혁명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 예를 들면 현 주석인 [[시진핑]]. 아버지 시중쉰은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b/Xi_Zhongxun_on_struggle_session_in_September_1967.jpg|조리돌림]]과 숙청을 당했고, 시진핑 본인은 중노동을 해야 했고, 누나 시허핑은 목숨까지 잃었다.]임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사건도 [[천안문 6.4 항쟁]]처럼 철저하게 묻고 은폐하고 싶겠지만 알다시피 그 규모가 '''묻을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기 때문에'''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직접 관련된 사람들만 수천 만이 넘기 때문. 대신 가능한 한 언급하는 걸 피한다. 인터넷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언급하면 복불복 확률로 삭제되는 정도.[* 단순히 [[천안문 6.4 항쟁|89, 64같은 숫자를 언급하는 것]]도 검열되는 것(...)과는 대조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