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주사회당(독일) (문단 편집) === 1990년 동독 총선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이 민주사회당으로 재창당한 직후인 [[1990년]]에 치러진 [[동독#s-4.3.2.1|총선]]은 [[동독]]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선거였고, 그동안 [[관제야당]]에 불과했던 정당들[*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동독)|동독 기독교민주연합]], [[독일 자유민주당(동독)|동독 자유민주당]], [[독일 민족민주당(동독)|동독 민족민주당]], [[독일 민주농민당]]]과 [[1989년 동유럽 혁명|민주화]] 이후에 창당된 [[신당]]들[* [[독일 재통일|통일]] 이후 [[동맹 90/녹색당]]으로 합쳐진 동독 녹색당과 동맹 90이 대표적이다.]이 [[정권교체]]를 외치며 선거에 임했다. 이때 민주사회당은 [[공산주의]] 노선을 포기한 다른 [[동구권]] [[공산당]]의 후신들처럼 범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며 정권 재창출을 이루려 했으나,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1946년]]에 [[독일 공산당]]과의 강제 합당을 통해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으로 합쳐지며 해산되었던 '''[[독일 사회민주당|동독 사회민주당]]의 재창당'''이었다. [[독일 사민당|사민당]]은 비록 수십년간 동독 땅에서 명맥이 끊기긴 했으나, [[연합군 점령하 독일|연합군 군정기]]까지만 해도 공산당보다 당세가 큰 건 물론이고 당시 좌우 진영 및 동서독 전체를 통틀어 최대 정당이었고, 동독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까지 사민당이 꾸준히 승리를 거둔 전통적인 사민당 [[텃밭]]이었다.[* 그래서 동서독 분단 이후에 치러진 [[1949년]] [[서독]] [[역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제헌의회 선거]]는 만약 분단이 없었다면 [[콘라트 아데나워]]의 [[독일 기민당|기민련]]이 아닌, [[쿠르트 슈마허]]의 사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의 동독 사민당은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전신이 된 구 동독 사민당에서 직접 이어지는 후신은 아니었으나, 오랜 공산 [[독재]]에 지쳤으면서도 [[우파]] 또는 [[중도주의|중도]] 정당을 찍긴 싫은 [[좌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고, 그렇게 1990년 동독 총선은 [[여당]]인 민주사회당이 일찌감치 지지율 3위로 처지고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동독)|동독 기독교민주연합]]과 동독 사민당이라는 두 [[야당]]의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그 결과 동독 기민련이 원내1당을 차지하며 승리하여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동독 사민당이 원내2당이자 제1야당이 되었으며, 기존 여당이었던 민주사회당은 원내3당이자 제2야당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동독 기민련 내각과 [[헬무트 콜]]의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서독 기민련]] 내각 간의 합의가 타결되면서, 동독은 해체되어 동독을 구성하던 주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 가입하는 [[흡수통일]]의 형태로 [[동서독 통일]]이 마침내 실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