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당(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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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창당 배경
2.2. 1990년 동독 총선
2.3. 1990년 통일 총선
2.4. 1990년대 ~ 2002년
2.5. 2002년 총선에서의 대몰락
2.6. 2005년 총선과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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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존재했던 독일민주사회주의, 좌익대중주의 정당으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동독 공산당)의 후신이자 좌파당의 전신이다.

2. 역사[편집]



2.1. 창당 배경[편집]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인해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의 공산주의 정권 역시 베를린 장벽과 함께 붕괴되고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동독의 유일 집권당으로서 일당독재를 하던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은 탈공산화 및 민주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인정하여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민주사회당(SED-PDS)라는 이름으로 재창당했고, 이듬해인 1990년에 예전 당명을 정식 명칭에서 삭제하여 민주사회당(PDS)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2.2. 1990년 동독 총선[편집]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이 민주사회당으로 재창당한 직후인 1990년에 치러진 총선동독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선거였고, 그동안 관제야당에 불과했던 정당들[1]민주화 이후에 창당된 신당[2]정권교체를 외치며 선거에 임했다.

이때 민주사회당은 공산주의 노선을 포기한 다른 동구권 공산당의 후신들처럼 범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하며 정권 재창출을 이루려 했으나, 치명적인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1946년독일 공산당과의 강제 합당을 통해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으로 합쳐지며 해산되었던 동독 사회민주당의 재창당이었다.

사민당은 비록 수십년간 동독 땅에서 명맥이 끊기긴 했으나, 연합군 군정기까지만 해도 공산당보다 당세가 큰 건 물론이고 당시 좌우 진영 및 동서독 전체를 통틀어 최대 정당이었고, 동독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까지 사민당이 꾸준히 승리를 거둔 전통적인 사민당 텃밭이었다.[3]

당시의 동독 사민당은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전신이 된 구 동독 사민당에서 직접 이어지는 후신은 아니었으나, 오랜 공산 독재에 지쳤으면서도 우파 또는 중도 정당을 찍긴 싫은 좌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고, 그렇게 1990년 동독 총선은 여당인 민주사회당이 일찌감치 지지율 3위로 처지고 동독 기독교민주연합과 동독 사민당이라는 두 야당의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그 결과 동독 기민련이 원내1당을 차지하며 승리하여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동독 사민당이 원내2당이자 제1야당이 되었으며, 기존 여당이었던 민주사회당은 원내3당이자 제2야당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동독 기민련 내각과 헬무트 콜서독 기민련 내각 간의 합의가 타결되면서, 동독은 해체되어 동독을 구성하던 주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에 가입하는 흡수통일의 형태로 동서독 통일이 마침내 실현되었다.

2.3. 1990년 통일 총선[편집]


1990년 동서독 통일 직후 기존의 동서독 의회는 모두 해산하고, 통일 독일 전체의 하원을 구성하기 위한 총선이 새롭게 실시되었으며, 민주사회당 역시 해당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선거법비례득표 5% 또는 지역구 3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기존의 서독 봉쇄조항을 준용하긴 했으나, 통일 직후의 과도기라는 점을 감안하여 구 서독 및 동독 지역의 비례득표를 따로 계산해서, 전국이 아닌 동서독 중 한쪽에서만 5% 이상 득표해도 비례대표 의석 획득이 가능했다.

덕분에 민주사회당은 구 서독 지역에서의 기반이 전무해서 전국 비례득표율이 5%에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구 동독 지역 한정으로 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비례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할 수 있었다.

2.4. 1990년대 ~ 2002년[편집]


통일 4년 뒤에 치러진 1994년 총선은 구 동서독 지역의 비례득표율 따로 계산했던 통일 총선과 달리, 전국 비례득표율 5% 이상 또는 지역구 3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게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봉쇄조항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민주사회당에게 구 서독 지역에서의 지지 기반이 전무한 것은 이때도 여전했기에, 전국 5% 득표율에 미달하는 위기에 봉착했는데, 다행히도 지역구 4석을 획득함으로써 간신히 봉쇄조항을 충족, 비례 의석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여 도합 30석을 얻었다.

1998년 총선에서는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민련 내각의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게르하르트 슈뢰더사민당요슈카 피셔동맹 90/녹색당 연대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고 실제로 사민-녹색 연대의 승리 및 슈뢰더 내각 수립으로 이어졌는데, 이때 민주사회당은 '어차피 사민당이 이길 거니까 소신투표하자'라는 구 동독 지역 민심에 힘입어 36석을 확보하며 선전할 수 있었다.

2.5. 2002년 총선에서의 대몰락[편집]


하지만 위와 같이 동독 지역구에만 의존하며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는 민주사회당의 선거 전략은 2002년 총선에서 치명적인 일격으로 돌아왔다.

당시 사민당게르하르트 슈뢰더 내각이 사회주의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내세우며 추진한 하르츠 개혁은 전통적인 좌파 지지층이 사민당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고, 덕분에 민주사회당은 사민당 지지층을 흡수하며 약진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슈뢰더 내각이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히며 지지율을 회복하자, 범좌파 진영의 표심이 사민당/녹색당 연합에 쏠렸고, 이는 민주사회당에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

선거 결과 민주사회당이 5% 득표율에 미달한 것은 늘 있던 일이라(...) 놀라울 게 없었지만, 구 동독 지역구 의석마저 비례 의석 획득의 마지노선인 3석보다 불과 1석 모자란 2석에 그치면서, 비례대표 봉쇄조항 돌파에 실패하여 한자릿수 의석만을 보유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민주사회당이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없었고, 이대로 가다간 원외정당으로까지 떨어질 것이란 위기감이 커져서, 구 서독 지역의 파트너를 절실하게 찾게 되었다.

2.6. 2005년 총선과 합당[편집]


2005년 사민당 내각을 이끌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지지율 하락으로 인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셀프 내각불신임결의를 가결시켜 의회 해산을 시전함으로써, 조기총선이 실시되었다.

이때 오스카 라퐁텐 전 연방재무장관[4]을 비롯한 사민당 내 의회좌파 강경파들이 슈뢰더 지도부가 이끄는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하며 사민당을 탈당하여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 대안(Arbeit & soziale Gerechtigkeit – Die Wahlalternative)[5]을 결성했고, 이로써 민주사회당은 서독 지역에서 함께할 파트너를 얻게 되었다.

덕분에 민주사회당/WASG 연대는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보다도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약진할 수 있었는데, 사민-녹색 연대와 CDU/CSU-자민 연대의 의석이 비슷해서, 사민-녹색 연대가 민주사회당/WASG를 끌어들인 적적록 범좌파 연정(R2G 연정)의 성립이 가능했으나, 민주사회당&라퐁텐과 슈뢰더의 사이가 최악이라서 실현되지 않았고, 기민련앙겔라 메르켈이 사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했다.

비록 연정 참여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선거에서의 약진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본 민주사회당과 WASG는 아예 하나의 당으로 통합을 추진했고, 그리하여 2007년 두 당의 합당을 통해 좌파당을 창당하며 민주사회당은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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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독 기독교민주연합, 동독 자유민주당, 동독 민족민주당, 독일 민주농민당[2] 통일 이후 동맹 90/녹색당으로 합쳐진 동독 녹색당과 동맹 90이 대표적이다.[3] 그래서 동서독 분단 이후에 치러진 1949년 서독 제헌의회 선거는 만약 분단이 없었다면 콘라트 아데나워기민련이 아닌, 쿠르트 슈마허의 사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4]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사민당 당수를 역임했다.[5] 정식 당명보다 보통 약칭인 WASG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