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중연합당/논란 (문단 편집) === [[통합진보당]]과의 연관성 === [[이광석]] 공동대표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헌재의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에서 전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어 '제2의 통진당'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0350976&code=61111511&cp=zu|#]] 그리고, 3월 20일, 구 [[통합진보당]]에서 광주전남연합을 대변하면서 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선동(1967)|김선동]] 전 의원과 [[경기동부연합]]의 대학생조직인 노선대[* 노동자학생연대선봉대의 약칭.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수도권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운동권 사이에선 미상공회의소 점거 농성, 매향리 사격장 점거 시위 등 과격한 선도투쟁으로 유명했다. 2007년 <자본주의연구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하다가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거 구속되었다. 김재연은 2003년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시절 사실상 노선대의 간판 멤버로 활동했다.] 출신의 [[김재연]] 전 의원이 입당하기로 하면서 제2의 통합진보당이라는 의혹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266117|#]] 3월 25일, 구 [[통합진보당]]내에서 경기동부와 동맹관계인 서울연합을 대변하던 [[이상규(정치인)|이상규]] 전 의원이 민중연합당에 입당하였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한민국 야당이 집권하려면 당당하게 종북 몰이에 맞서서 북한과 손잡고 평화 통일, 대화를 통해 정의와 평화가 물결치는 정당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421&aid=0001962832|기사]] 이로써 민중연합당이 제2의 통진당이라는 의심이 점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민주노동당과 통진당을 장악하고 종북행보를 보이던 [[NLPDR]]계 [[경기동부연합]]의 위장 조직 아니냐는 추정이 팽배하다. NL은 언제나 자신들의 주체사상, 종북주의는 뒤로 감추고 겉으로는 대중들이 공감할 만한 구호를 내걸고[* 예를 들어 1987년 6월항쟁 때는 민주화 인사들 틈에 섞여 '대통령직선제 개헌' 물타기를, 그뒤에는 '정권교체', '조국통일'. 2000년대 이후로는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진보정치 실현', '비정규직 문제 해결', '한미FTA 반대', '한나라당 심판' 같은 구호를 내걸었다. 구호만 보면 야당 지지층들한테 먹히는 이야기들인데, 정작 사람이 모이면 결국 하는 건 반미투쟁, 종북노선이다.], 이런 구호에 동조하는 비NL계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공개조직의 형태로 움직이는데, 통진당이 강제해산 당하자 [[헬조선]], [[수저계급론]] 담론에 편승해서 소위 흙수저론을 전면에 내걸고 사람들을 모아서 민중연합당을 창당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후보들은 [[민주노동당]]의 후신이라고 반박하거나 주장하는 팜플렛과 명함, 전단지를 배포했다.[* 주로, [[수원역]]과 [[인계동]]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민노당의 인사관계 접점과 민노당을 중심으로 진보정당들과 통합한 것이 통합진보당이라는 것을 보면 그게 그거 아닌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다르게 생각하면, 통진당이 이미지가 안 좋은 이유가 통진당 내 당권파, 즉 '민노계'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민주노동당의 후신이라는 말은 통진당에서 갈라져나온 정의당과 구분짓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범인들'이라고 불렀더니 '주범'이라고 답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을 듯.] 나름대로, 엄청난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다. 3월 11일 지역구에서 90개 이상 지역구에 후보를 출마시킬 것을 선언했는데 이는 정의당이 63개 지역구에 후보를 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또한 창당하자마자 2만 당원을 모았는데 2016년 3월 기준으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는 당들 중 [[정의당]] 당원 수가 3만여 명, [[노동당(대한민국)|노동당]]과 [[녹색당(대한민국)|녹색당]]이 각각 1만 명 정도 된다. 가장 크고 대중적인 정의당이 당원 2만 명을 달성한 건 2015년 12월의 일이다. 민중연합당이 정의당이 창당 후 3년 만에야 쌓은 것을 1달 만에 달성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굉장한 조직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 조직력을 갖출 만한 정당은 [[새누리당]]이 딴살림을 차린 경우가 아닌 한 불가능하다.[* 결국 새누리당의 비박계가 [[바른정당]]이라는 딴살림을 차렸으나 이들도 창준위 등록부터 창당대회까지의 기간이 '''민중연합당보다도 길었으며,''' 이후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과 합당하는 [[바른미래당]] 창당 때도 이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다.] 이러한 조직력이 강력한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당의 한 축인 '농민당'의 기반인 전농계열이 [[경기동부연합]]과 강한 커넥션이 있다는 점, '비정규직철폐당'의 대표 강승철은 자주파 계열과 동맹관계인 [[민주노총]] 국민파 출신이라는 점, '흙수저당'은 [[경기동부연합]] 한국대학생연합[* 위에 서술된 노선대를 포함한 NL혁신파 운동권이 대중성을 상실한 한총련에서 떨어져 나와서 만든 학생조직이다. [[김재연]]이 한대련의 집행위원장이었다.] 계열 정당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점, 창당대회가 [[경기동부연합]]의 성지인 [[성남시]]에서 열렸다는 점, 옛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이 입당하고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경기동부연합]] 계열 정당으로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민중연합당 측은 부인하고 있으며[[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8213|#]] 민중의소리에서도 그러한 의혹 제기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http://www.vop.co.kr/A00000995836.html|#]][* 다만, 민중의 소리는 구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이나 [[NLPDR]]계열에 매우 친화적인 언론이다. 사실상 경기동부의 기관지라는 평가도 있다.]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민중연합당 국회의원 후보 60명 중 40명이 통합진보당 출신이며, 비례대표 4인은 전원 통합진보당 출신이라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2959202|#]] 밑의 김식 후보 또한 통진당 출신이다. 하지만 [[딴지일보]]에 올라온 [[http://www.ddanzi.com/doctuPolitics/86103424|독자투고]]에서는 "통진당 외부단체 관계자까지 포함할 경우 후보자 중 5명을 제외한 전원이 통진당 관계자" 라고 밝히고 있다. 저 자료들, 공식경로로 공개된 자료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엄연히 후보자 정보공개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승인을 통해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민중의소리]] 등 NL계 언론매체 기사를 한땀한땀 정성껏 뒤져서 연결시킨 알찬 자료다. 일독을 권할 만한 자료. 당원이야 둘째치고, 20대 총선 관련 후보자들 전원을 이 잡듯 뒤져서 5명 빼고 통진당 경력이 있다고 서술한 방대한 자료다. 결론은, 민중연합당은 통진당의 후신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결과만 낳은 꼴. 더군다나 민중연합당 대변인이 M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연합정당을 한국 정당사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의 재건을 일축했는데, 그 직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에도 문제 있지만 [[심상정]] 당시 중앙위원회 권한대행의 날치기도 문제라며 사실상 당권파의 입장을 갖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후신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해버렸다.후술하자면 중앙위원 다수가 비당권파에 동의하는 위원들이었고 당권파 중앙위원들은 당시 통합당시에 합의했던 정당 중앙위 비율 등 어이없는 이유를 들어 중앙위 자체에 정당성이 없다는 성원에 문제제기하고 소통하지 않으려는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youtube(BFd6R9YOFq8)] 애초에 비당권파 의장단은 표결로 밀어붙여도 통과될 안이었고 표결조차 방해한 것이 당권파 측이었다. 당시 상황은 한대련계 당원들이 집단으로 참석하여 큰 목소리로 방해해서 의사진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악질이었다. 그 이후 만장일치안으로 혁신안을 통과시키자 대기하고 있던 한대련계 당원들이 의장단을 폭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