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광온 (문단 편집) === [[MBC]] 재직 시절 === [[1957년]] [[4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현산남초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 학사를 졸업하였다. 1984년 MBC에 입사했으며, 사회부와 외신부,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1997~2000년은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했으며[* 이 때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를 취재했다.], 2000년 5월에 [[김재철(언론인)|김재철]]의 뒤를 이어서 국제부 부장을 2001년 7월까지 했다. 그 뒤 보도행정부 기자, 정치부 기자를 했다. 2000년 5월 13일부터 2002년 1월 13일까지는 [[뉴스데스크]] 주말앵커를 맡아서 진행했다. 2005년 2월에는 통일외교부장으로 보직이동됐고,같은해 9월에는 뉴스편집센터 뉴스편집1CP로 보직 이동되었다. 이듬해 8월에는 보도국 정치•국제 에디터가 됐으며 2007년 7월부터 2008년 8월까지는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보도국장을 맡았다.[* 석연치 않게 국장직에서 물러났는데, 용산참사 보도나, 1월 1일 재야의 종 타종 행사 당시에 있었던 시위를 KBS와는 달리 필터링 하지 않고서 방송에 내보내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후 [[이동관]] 홍보수석의 고교, 대학 후배인 전영배 기획조정실 통일협력팀장이 보도국장으로 왔는데, 라디오 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김미화가 잘릴 뻔하다가 잔류되고, 뉴스데스크에서 신경민 앵커(국장급)을 잘랐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로 국장직에서 물러났으며, 몇달 후 사장특보를 거쳐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후 기획조정실장으로 올라갔고, 이듬해 2월 인사 때 보도본부장으로 이동해서 보도국 보수화의 주도자로 노조에 의해 비판받았다.] 이후 국장직에서 다시 논설위원으로 이동했고, 동시에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는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