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우영 (문단 편집) == 일생 == [[일제강점기]]인 1928년 1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시|정주군]]에서 아버지 방재윤(方在胤, 1901. 2. 13 ~ 1940. 4. 30)과 어머니 [[이(성씨)|수안 이씨]](遂安 李氏) 이성춘(李成春, 1906. 5. 13 ~ 1973. 12. 8)[* 이은엽(李殷葉)의 딸이다.]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방재윤은 본래 [[방응모]]의 친형 방응곤(方應坤, 1880. 11. 25 ~ 1942. 11. 2)의 차남인데, 당시 아들이 없던 방응모의 [[양자(가족)|양자]]로 들어가면서 방우영은 형 [[방일영]]과 함께 방응모의 양손자가 됐다. 방응모는 금광사업으로 떼돈을 번 뒤 1932년 [[조선일보]]를 인수하게 된다. 그가 5살이 되던 해였다. 1940년 조일심상고등소학교, 1946년 [[경신고등학교(서울)|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연희대학교]] [[연세대학교/학부/경영대학|상과대학]]에 들어가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졸업했다. 이어 1952년 조선일보 공무국 견습생으로 들어가 8년간 사회부, 경제부 기자로 일한 뒤 1960년 조선일보 계열사인 아카데미극장[* 1968년까지 [[조선일보]]에서 자사 사옥부지에서 운영하던 극장. 60년대 인근의 국제극장, 충무로의 명보극장, 을지로의 [[국도극장]] 등과 '''방화(한국영화)전용관'''으로 유명했다.][* 60년대 국내 영화업계는 10대 개봉관 극장-전속 영화사-전속 감독/작가-전속 배우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국제극장-동아흥행-홍성기 감독-[[김지미]], 명보극장-신필름-[[신상옥]] 감독-[[신영균(배우)|신영균]] 등의 형태였다. 아카데미극장은 원래 외화상영관이었으나 방화전성시대가 도래하자 1962년 [[학교법인 한양학원]]에서 설립한 '''한양영화공사'''와 전속을 맺고 방화(한국영화)전용관으로 변모한다. 이후 극동흥업까지 추가되어 주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청춘영화를 개봉했는데, 63년~68년 사이 아카데미 극장의 한국영화 개봉작 125편 중 70%에 달하는 88편의 작품이 신성일 주연작이라 일명 '''신성일 극장'''으로 불렸는데, 그 대다수가 한양영화사 또는 극동흥업의 김기덕 감독 작품이다.][[https://news.joins.com/article/5610629|#]][* 신성일의 자서전 내용에 의하면 아예 한양대의 연영과 설립과 영화사 설립이 당시 아카데미 극장의 사장이던 [[방우영]] 사장이 한양대 김연준 총장에게 요청해서 이루어졌다고 나온다. 나이차가 있기는 하지만, 김연준과 방우영은 같은 연희전문 선후배 출신이고, 같은 이북 출신이므로 친분이 두터웠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https://news.joins.com/article/5597894|#]] 대표를 맡았다. 이후 조선일보 상무로 복귀해 발행인, 전무, 대표이사,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976년부터 14년간 한국언론연구원 비상근 이사장도 겸임했다. 1993년 형 방일영의 장남이자 [[조카]]인 [[방상훈]]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주고 조선일보 회장이 되었고, 2003년에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2008년 그의 55년 언론계 생활을 정리한 팔순 회고록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를 펴냈다. 83세 되던 2010년에는 조선일보 상임고문으로 추대됐다. 2세 경영이 안착하면서 방우영 일가는 [[스포츠조선]]을 받아 분가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1977~1980년까지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이사장, 1980~1981년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1981~1997년까지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 1997~2013년까지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이사장, 2015년부터 동 재단 명예이사장을 각각 지냈다. 2016년 5월 8일 오전 11시 7분 [[세브란스 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