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남준 (문단 편집) === 결혼 === [[오노 요코]] 때문에 잠깐 [[존 레논]]과 약간의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백남준은 그 당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요코는 존을 선택해 그와 결혼했고, 백남준은 꽤 충격 받았던 듯. [[존 케이지]] 등과도 교분이 있었으며 비디오 아트 예술가 이전에는 피아노 행위예술가로도 알려진 바 있다. 무엇보다 연주하다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숴버리던 짓도 곧잘 했었다.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pds.joinsmsn.com/htm_2010072315231630003010-001.gif|width=100%]]}}} || || ▲ 뉴욕 웨스트베스 작업실에서의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 1977년 자신과 같이 행위예술 작업을 했던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1937.8.2 ~ 2015.7.23)와 결혼했다. 구보타 시게코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매료되어 자신의 남자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을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1963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전위예술가로 소개한 기사를 본 것이다. 1년 후 백남준은 일본으로 퍼포먼스를 하러 갔다. 구보타 시게코는 이 퍼포먼스를 보러 갔고, 그때 백남준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신고 있던 구두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고, 붓 대신 머리를 이용해 거침없이 선을 그리는 것이었다. 엉망이 된 몰골로 퍼포먼스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백남준을 호감을 표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아주 섹시했다고. 구보타 시게코는 괜히 그 공연을 보러 간 것은 아니다. 그녀도 역시 전위예술,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며 전위성을 찾는 정도였다. 그러던 차에 피아노를 도끼로 깨부수는 사람을 알게 되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결국 결혼[*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백남준에겐 첫번째 부인이 있었다.]. 이혼녀[* 게다가 전 남편은 다름아닌 백남준의 친구인 작곡가 데이비드 베어맨이었다. 백남준을 기다리다 지친 상황에서 베어맨이 청혼을 해서 결혼하게 된 것. 하지만 일본인과 독일인을 싫어했던 시아버지 때문에 갈등을 빚고 결국 이혼한다.]인 구보타 시게코가 자궁암으로 불임 진단을 받고 엄청난 수술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백남준이 본인 명의의 의료보험 혜택을 활용하자며 '''먼저 청혼'''을 하고[* 백남준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불임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구보타 시게코의 불임 진단과 의료보험과 관련해서는 주변 친구들에게 전혀 입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면, 백남준의 구보타 시게코에 대한 배려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으며, 구보타 시게코 역시 이런 백남준의 배려와 사랑에 사후에도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백남준과의 삶을 회고하는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출간하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7753704|#]] 다만 양자격인 백남준의 조카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갈등을 빚어서 이미지 하락을 겪기도 했다. 이후 암 투병중이던 구보타 시게코는 2015년 7월 23일 만 77세로 작고했다. “나의 사랑, 백남준”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뉴욕에 살며 돈이 없었는데 한국의 백남준 형님이 1만 달러를 보내줬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돈이었다. 그런데 백남준은 그 돈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 없었고, 컬러 텔레비전과 골동품이나 사다가 대뜸 불상을 하나 구입했다. 구보타 시게코는 이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돈을 다 탕진했는데 전시는 하고 싶어했다. 당시 ‘하늘을 나는 물고기’ 전시를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못하고, 사뒀던 불상과 TV로 ‘TV부처’를 만들어 전시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뉴욕 미술계에서 초대박을 친다. 동양의 오래되고 고고한 상징과 서양의 최첨단 기술이 마주보며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미지가 큰 감흥을 준 것이다. 결과는 좋았지만 백남준은 기본적으로 경제관념이 아주 부족했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만큼[* 그의 유년기 집안에는 한반도에 딱 3대밖에 없던 승용차가 하나 있어 그것을 타고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그만큼 부유했다.] 돈을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사업가 아버지의 길을 전혀 따르지 않고 음악과 미학에 관심이 깊었다. 다른 일화가 하나 있는데 어쩌다 구보타 시게코가 돈이 생겨서 백남준에게 용돈으로 아껴쓰라며 줬는데 저녁이 되자 돈이 하나도 없다 했다고 한다. 어디에 썼냐고 물으니 받은 즉시 나가서 비싼 치즈케이크를 먹느라 거기에 다 썼다고 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